폭염으로 한반도가 연일 들끓는 가운데 이상 기후에 취약한 노인들은 더욱 지쳐가고 있다.
신체적인 기능이 떨어지는 데다 홀로 사는 인구가 적지 않고, 일하더라도 육체 활동이 주를 이루는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아 폭염에 무방비일 수밖에 없다.
26일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옆 도로에 좌판을 깐 과일 노점상 박 모(69) 씨는 선풍기도 없이 조그만 파라솔 밑 그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부채를 들고 있었지만, 파리가 달라붙지 않을까 과일을 향해서만 부채질을 했다.
박 씨는 “해도 해도 너무 덥다”며 “땅이 너무 뜨겁다”고 고개를 저었다.
양천구의 한 지하철역 앞에서 만난 노인은 직장인들에게 광고 전단을 나눠주느라 말을 걸 틈조차 없을 만큼 바빴다.
전단을 배포하려면 양손을 다 써야 하기에 흔한 휴대용 선풍기조차 들 수 없었다. 행인들이 받기를 거부하고 지나가면 그제야 손에 들고 있던 전단으로 연신 부채질을 했다.
생계를 이어나가고자 폐지를 주워 모으던 노인들은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워낙 중노동이다 보니 더운 날씨에 폐지나 박스를 실은 수레를 끌기 어려워서다.
자원순환단체총연맹 관계자는 “요즘 너무 더워서 폐지 수거하시는 분들이 확 줄었다”며 “우리도 어르신들께 되도록 낮에는 일하시지 말라고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로 곁 비좁은 공간에서 종일 더위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들도 있다. 골목마다 있는 사설 주차장 관리인들이다.
학교나 아파트 경비실의 경우 점차 냉방시설을 갖추는 추세지만, 이들 소규모 사업장의 경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서울 중구의 한 사설 주차장에서 일하는 최 모(59) 씨는 “(관리실은) 나 혼자만 앉아도 다른 사람은 들어설 공간이 없을 만큼 좁다”며 “이곳에서 창문을 열어둔 채 선풍기로 여름을 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도심은 그렇다 쳐도 논밭에서 일하는 노인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돼있다. 실제 질병관리본부가 이달 23일까지 집계한 올해 온열 질환자 1303명 중 135명이 농림어업숙련종사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찜통더위에 취약한 노인의 실정은 사회 전체가 관심을 두고 대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위를 피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이에 관한 교육 및 지원 사업이 뒤따라줘야 한다는 것이다.
임홍재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원장은 “방학 기간에는 학교가 쉬는 만큼 냉방장치가 있는 학교에서 노인들이 쉴 수 있게 해주는 것도 방법일 것”이라며 “경비원 등은 결국 고용주의 몫이겠지만, 한창 더울 때는 확실하게 쉴 수 있도록 돕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임 원장은 “폭염이 자연재해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경제력으로 봤을 때는 재난으로 인식해서 정부와 지자체, 시민단체 등에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그래야 폭염 속에서 노인들이 불행할 일을 당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