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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고 느리게

정 숙 자(본지 객원기자)
요즘 나는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산이라고 해봐야 2시간이면 완주하고 되돌아서 와도 서너 시간이면 족한 개화산 둘레길이다. 처음엔 살이 너무 쪄서 다이어트를 위해 간다고 생각했다. 혼자 산길을 걷다보면 꿩 소리도 들리고 산새들의 지저귐도 들린다. 어떤 새는 나를 피해 나뭇가지를 옮겨 앉으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지저귀는데 그 모습이 흡사 나를 보고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왜, 내가 너를 해칠까봐 무섭니? 아니면 반갑다는 거니?" 하며 산새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아직은 봄이라고 말하기엔 좀 이른 날엔 진달래가 핀 것을 보고 반가워했는데 어느새 철쭉이 피고 지고 새하얀 아카시아 꽃이 피어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연두색 나뭇잎이 초록으로 변하는 모습도 같은 이치다. 사람도 어느 날 갑자기 늙는 것이 아니라 저렇게 조금씩 변해가다가 오늘의 내가 되었을진대 귀여운 우리 손자는 할머니는 처음부터 할머니로 태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 문득 지금껏 내가 살아온 날과 내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꽤나 부지런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자는 잠 덜 자고 남들이 노는 시간 줄여가며 남들보다 앞서지는 못해도 남들만큼은 살겠다고 부지런을 떨었다. 매일 밤 12시에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새벽기도를 다니며 바쁘게 살아 온 세월이 30년이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엄마는 잠도 안자는 사람 같아요. 내가 아무리 늦게 와도 엄마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새벽에 일어나도 엄마는 깨어 있고 말입니다" 하고 말했다.
그렇게 살다보니 오늘의 내가 되어 있었고, 친구들처럼 나도 늙어 있었다. 혼자 산행을 하면서부터 내가 달려왔던 삶의 속도에 변화가 생겼다. 느리게 좀 천천히 가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빨리 간다고 해서 늙음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노화(老化)가 그 자리에 멈추어 서 주는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에 머무르게 되었다.   
어느 날은 그렇게 지름길이 아닌 둘레 길을 걷다가 숲속에서 작은 도서관을 발견했다. 충격이었다. 이런 산속에 서고(書庫)가 있다니! 누구의 아이디어 인지는 모르지만 반가웠다. 책장 두 개에 가득 꽂힌 책들과 쉴 의자와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 겸 식탁이 마련되어 있었다. 
바쁠 것도 없고 급할 것도 없는 나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산에서 읽을 책 한권 가져오는 것도 배낭이 무거워서 못 가져 오는 형편인데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나는 서고에 비치되어 있는 책을 꺼내 읽다가 읽던 곳을 접어 두고 다음날 가서 또 읽고 하는 재미로 더 자주 가곤 한다. 조금 느리게 천천히 가다 보니 만난 행운이다.
좋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 그리고 산의 고요가 주는 정서, 어느 것 하나도 버릴 수 없는 소중한 장소가 되었다. 
가끔은 그곳의 정서와는 달리 등산객들이 펼쳐놓고 앉아 왁자하니 떠들고 가는 무리들도 있지만 그것 또한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는 여유도 생겼다. 느림의 미학은 여유이다. 마음을 쓸 때도 한 호흡 늦추려 애쓴다. 그러고 보니 왈패들의 그 무례함도 미소로 지켜볼 수 있었고 주변의 모든 것에 관대해 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때 얼마 전에 읽었던 한 줄의 글이 생각났다. “씨앗이 자라는 속도를 넘어선 곳에서는 공포만이 자랄 뿐 안심은 없다.” 이 말은 일본의 환경운동가 ‘쓰지산이치’가 한 말인데 우리 삶의 속도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게 하는 말이었다.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 삶의 도로 위에 세워놓은 속도제한이라든가 우선멈춤 표지판과 같은 것이기도 한 이 말이 오늘의 내 마음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조금 외로운 듯해도 혼자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하는 여유가 더 좋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산행을 혼자서 한다. 그 고운 산의 정서를 흔들어 놓을 요소는 배제하고 혼자 걸어야 사유(思惟)의 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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