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위원회·법무부개혁위도 “피해자 거부의사로 강간죄 판단” 권고
‘미투’이후 국회에 개정안 다수 계류… “安, 현행법 처벌 가능” 의견도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여성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노 민스 노’(No Means No) 룰과 같은 ‘비동의 간음죄’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노 민스 노 룰은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드러냈는데도 성관계가 이뤄졌다면 이를 성폭행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규범이다. 1990년대 캐나다 대학가를 중심으로 나온 캠페인 구호로, 지인에 의한 강간이나 데이트 성폭력 피해 등을 막기 위한 취지에서 시작됐다.
한발 더 나아간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 룰도 있다. 약물 등에 의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성폭행 피해를 당하는 경우도 보호해야 하므로, 명시적인 동의 의사표시 여부로 강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규범이다. 두 규범 모두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뤄진 성관계를 범죄로 처벌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성폭행이 성립하는지를 따지는 국내 형법은 국제기준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형법 297조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을 강간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법원은 폭행이나 협박 정도가 상대방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는 수준에 이른 경우에 유죄를 인정하는 사례가 많았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지난 3월 형법 제297조가 명시한 ‘폭행 또는 협박’이라는 기준보다 ‘피해자의 자발적 동의 없이’라는 기준을 넣어 이를 우선시하도록 수정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법무·검찰개혁위원회도 지난 6월 상대방이 반항할 수 없게 하는 폭행 또는 협박이 있어야 강간죄가 성립된다고 규정한 형법 제297조가 피해자 권리보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피해자의 거부 의사’를 강간죄 처벌 기준으로 삼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유죄를 선고하고 싶어도 현행법에서는 처벌할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취지의 재판부 언급이 나오면서 현행법 개편 요구에 불을 댕겼다.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은 지난 3월 비동의 간음죄를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동의 없이 사람을 간음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조항이 추가됐다.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이 낸 형법 개정안도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강도강간죄에 한해 ‘사람의 의사에 반해 강간한 경우’를 범죄 성립 요건으로 추가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비동의 간음죄 신설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는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점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기지 않도록 세심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과 맥이 닿는다. 아울러 비동의 간음죄는 피해자 중심적 관점에서 성폭력 범죄에 접근하는 법인 만큼, 가해자로 지목된 쪽에서도 억울함이 없도록 범죄 구성요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제기된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음’을 증명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 쪽에서 ‘적극적 동의를 받았다’는 걸 증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