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반삭 머리를 한 여인이 무엇이 그리 좋은지, 이빨을 드러내고 활짝 웃는다. 동그란 얼굴에 웃음이 번져나간 흔적이 나이테처럼 남았다.
16일 찾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는 붉은 반삭 머리의 여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은 까르르 웃거나,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한 번 덤벼보라'고 말하거나, 나른한 표정을 한 채 누워 있었다. 조각가 송진화(55)가 지난 3년간 빚어낸 나무 조각들이다.
제 작업은 일기를 쓰는 것 같아요.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훅 치밀면 저런 애를 만들고, 몸과 마음이 좀 까라지면 이런 애를 만들죠."
이날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여인들과 똑 닮아 있었다. 매우 짧은 머리와 동그란 얼굴, 너풀거리는 옷까지도.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가 나무를 깎아 여인을 조각하기 시작하기는 12년 전이다. "동양화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제 속에 바글바글리는 것이 있었던 것인지 후벼 파는 작업을 해야지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먹을 잘 다루지 못한다는 열등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는 놀이터 등지에 버려진 나무들을 구해다 쓴다. 그러다 보니 종류도 소나무, 오동나무, 은행나무, 참죽나무, 향나무 등 다양하다. 그는 "그런 나무들을 딱 보면, 그 안에 여인 형상이 들어있는 게 보인다. 어떻게 생각하면 (원래 있던 것을) 공짜로 먹는 것"이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송진화 작업을 꾸준히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25점이 출품된 아트사이드갤러리 전시 '히어 앤 나우'(Here and Now)에서 적지 않은 변화를 눈치챌 것이다. 깨진 소주병에 걸터앉거나, 섬뜩한 식칼 위에 서커스 하듯이 서 있던 여인들은 한결 차분해졌다.
작가는 "예전보다 마음이 여유로워진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길을 걷는 외동딸이 최근 결혼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고, 작가 자신도 육십이 가까워진 탓이다.
자랑스럽게 "제가 한 팔뚝 한다"고 말했지만, 작은 체구의 작가가 큰 나무를 윤기가 나도록 완벽하게 다듬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큰 톱으로 목재를 칠 때를 가장 즐기는데, 파편이 밖으로 튀는 모습이 마치 피가 튀고 살이 튀는 것 같다"고 말하는 작가에게서는 여전한 "바글거림"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