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겨운 무더위에 지처 모두들 짜증난 주말에 조간신문을 보다 속 터지는 기사에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제부총리가 이미 방문한 4개 대기업그룹에 이어 평택공장으로 삼성을 방문할 예정인데 청와대 일각에서 ‘투자구걸은 안 된다.‘ 반대하는 기류가 있어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보도 때문에 김 부총리가 구걸하러갈 계획이 없다고 해명하고 나서는 한심한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문제의 구걸이란 거지가 한 술 찬밥을 빌어먹는 형국을 의미하는데 일국의 부총리가 기업을 찾아가 구걸을 한다는 꼴로 몰아갔으니 일테면 우선 정부나 당사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구걸시비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그 배경이나 그런 필요성이 얼마나 절박한 가에 주목한다.
지금 우리나라 실물경제가 저조한 조짐을 보이고, 설상가상으로 고용은 갈수록 악화되고, 허술한 저임금해소책으로 온통 기업과 사회를 혼란 속에 빠트렸다.
한데 그런 경제의 저조현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현금자산이 풍부한 대기업한테 투자와 고용을 권유하러 간다는 게 어찌 ‘구걸’이라 하는가 모르겠다.
경제부총리가 거지일리 만무하니 기업방문을 비루한 구걸로 인식하는 것은 무지한 의식이다.
삼성을 방문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므로 소승(개인 수레)이 아니고 대승(공인의 큰 수레)이니 구걸 시비가 당치않다.
방문목적을 생각하건대 그 떳떳한 대의 성이 분명하고 시급한 국가과제에 도움이 될 현안의 해결일진데 구걸이면 대수고 설사 ‘애걸’이라면 무에 부끄러우랴?
어려운 경제를 활성화 시키고 일자리 만들어 청년백수들한테 희망을 준다는 일이라면 경제수장으로서 애걸복걸해서라도 성사시켜야 마땅하거늘 그 무슨 알량한 자존심이라고 부인하고 나선단 말인가.
김 부총리나 청와대 관리들이란 모두가 ‘공복 公僕’이다. 그게 무슨 뜻인지는 초등생도 ‘국민을 위한 심부름꾼’이라는 사실을 익히 안다. 그게 국민이 필요하고 국민에게 유익하면 자기 한 몸을 희생해서라도 소임을 다하는 게 공복 된 도리이다. 그런 사명을 위해서라면 구걸이 아니라 애걸을 하는 게 너무나 마땅하다.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은 가난한 나라 대통령임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서독 항공편을 얻어 타고 서독으로 날아가 경제부흥에 필요한 자금지원을 간청했었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버리고서 읍소했다.
진정 잘 사는 나라를 건설하려는 애국심으로 상업차관 지원을 위해서였다.
그 거액차관의 지불보증담보가 없는 가난한 나라 대통령이 제공한 담보가 2만여 명에 달하는 광부와 간호원 이었다. 채탄은 지하 1000 미터, 간호업무는 시신 닦는 혐오업무였다. 경제부흥이란 저토록 힘들고 고통스러운 역사다. 대통령 내외와 광부 간호사들이 만나 눈물바다를 이룬 게 뼈에 사무쳤다.
그저 하루 속히 국민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애걸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그는 국민을 사랑하는 대통령이었다.
그러므로 경제부처의 수장이 기업더러 투자를 하고 그로서 일자리창출에 기여해 달라고 하는 걸 구걸이라 갈등한 관리들이란 진정 공복다운 의식이 결여된 것이다.
큰 수레를 탄 공복답게 경제총리가 투자여력이 있는 기업들을 자주 점심식사에 초청해 투자도 권하고 경제정책의 자문도 받는다고 체면이 구겨지나 자리가 위태로워지는 가 모르겠다.
경제란 첫째도 둘째도 실리를 추구함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공자도 좋은 정치란 강한 군대를 갖추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백성을 굶주리지 않게 먹이는 것 ‘食’, 즉 경제라 했다.
청와대엔 자존심이나 체면만을 중시하는 참모들만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정 국민이 박수를 보낼 대통령을 만들려면 당당하게 큰 수레를 타고 구걸해서라도 기업으로 하여금 기꺼이 투자하고 고용창출에 참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참되고 유능한 공복이란 대의(국민)를 위해서라면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한신이 큰 뜻을 위해 백정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지나가는 수모를 감수했던 것처럼 자신을 죽이고 대의를 좇아야 옳다. 대의보다 개인의 체면을 더 중시하는 건 진정 나라사랑하는 공복이 자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