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제16차 복음통일 포럼 특강 전문1
“세상 부러움 없이 잘 사는 나라” 주장, 평민들도 안믿어
본지는 47호부터 49호까지 3회에 걸쳐 국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안드레이 란코프(Andrei Lankov) 박사가 지난 6월 8일 제16차 복음통일 포럼에서 행한 특강 전문을 게재합니다.
본 특강 내용은 ‘한국장로신문’ 제1608호(9월 1일자) 16면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편집자 주>
요즘에 남북교류가 많이 좋아지기 시작한 조짐이 보이고 있다. 한국 언론, 특히 진보 경향이 심한 언론은 낙관주의가 가득 찬 상태이다.
한겨레신문과 같은 진보경향 언론을 보면, 통일이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고, ‘우리 민족끼리’ 잘 살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이것은 당연히 환상일 뿐이다.
그래도 새로운 상황 하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조건이 형성되었다. 미-북 정상회담이 별 문제 없이 이뤄진다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대북제재도 어느 정도 완화될 것이다. 당연히 북한은 그 약속을 지킬 생각조차 없지만, 북한이 비핵화가 아니더라도, 핵군축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 측은 보상으로 대북제재 완화를 할 수 있기 때문에 , 결국 남북교류가 다시 활발해질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될 것이다. 쉽게 말하면 김대중 노무현 시대의 햇볕정책과 비슷한 정책을 한국 정부가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연히 북한과의 교류와 경제협력은 ,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지지 못한다. 북한과의 협력을 열심히 하고 싶어하는 진보파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도 한다. 한국 사람들 다수는 상호주의를 좋아한다.
그러나 남북한 경제력 차이와 정치,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남북교류는 거의 모두 남한 측에서 후원을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보수파를 비롯한 다수의 한국 국민들은 햇볕정책 시대의 대북 정책을 ‘퍼주기’라고 비판하고 상호주의 원칙에 의한 정책을 요구한다. 이 요구는 이론적으로 합리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그렇게 되기가 어렵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북 압박 외에 대안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북한과의 경제 협력과 교류는 북한 정권의 권력유지 및 인권탄압, 핵개발과 ICBM 개발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근거가 별로 없다. 기대와 달리, 대북 압박으로 이룰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반대로 북한과의 경제협력과 발전은 북한 백성들의 어려운 생활을 도와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에서 바람직하게 생각되는 변화를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이다.
대북압박- 효과가 거의 없다
사람들의 믿음과 다르게 대북 압박이 만들 수 있는 효과가 거의 없다. 대북제재가 아직 별 효과가 거의 없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국제제재가 어떤 나라의 정치를 바꾸게 만들 때에도 그 나라 엘리트들의 생활에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엘리트 계층은 나라가 국제제재를 받을 경우에, 살기가 어느 정도 어려워 질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특권과 권력이 많다. 국제제재 때문에 고생이 많은 사람들은 특권층들이 아니라 거의 모두 서민들이다.
제재를 받은 국가에서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지기 시작한다면 수많은 경우 서민들은 엘리트 계층이 실시해왔던 정치노선에 불만과 짜증을 표시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엘리트 계층이 정치노선을 바꾸기를 원하게 된다. 국제제재 대상이 된 나라는 어느 정도 민주정치가 있는 나라의 경우에 서민들은 선거 때 자기 뜻을 표현할 수 있다. 좋은 사례는 2010년대 이란이나, 1990년대 세르비아이다. 민주정치가 없는 나라이면 백성들의 혁명이나 대중 반체제 운동에 참가할 수도 있다.
엘리트 계층 일부는 백성들의 불만과 흔들리기 시작한 정치 상황을 보고 옛날 노선을 포기하도록 결정권자들에게 압박을 가하거나, 반체제 세력과 손을 잡고 체제에 도전할 수도 있다. 결국 혁명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북한을 보면, 국제제재를 당한 기타 국가와 다르게, 전술(前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
북한은 선거가 없는 나라이다. 북한 백성들은 대북제재 때문에 살기가 많이 어려워질 경우에도, 투표소에서 엘리트계층에 도전할 기회가 아예 없다.
북한에서 혁명이나 반란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은 일이다. 북한에서 시민사회가 없고, 주민들에 대한 감시가 매우 엄격하기 때문에, 북한 엘리트 계층은 체제가 무너진다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한다.
노동당 고급간부나 인권탄압을 많이 했던 국가보위부 보위원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엘리트층은 자신이 비상구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북한 엘리트 계층은, 만약에 적화통일을 했을 경우에 자신들이 남한엘리트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알고 있다. 사법기관이나 공안기관 관계자, 고급공무원, 종교인, 사업가, 정치인들 다수가 목숨을 건지기 어려울 것이다. 나머지 남한 엘리트들도 오랫동안 강제노역을 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남은 인생을 차별과 멸시에 시달리는 하층민으로 보내야 할 것이다.
북한 엘리트계층은, 체제가 무너지면 자신들이 이와 같은 운명을 겪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당연히 심한 과장이다. 그래도 그들이 그렇게 믿고 있다.
그 때문에 북한은 매우 심한 경제위기에 빠질 경우에도, 체제유지를 위협할 수 있는 정책을 실시하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며 북한은 비핵화 선언을 많이 할 수 있지만, 사실상 모든 핵무기를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
핵무기를 전부 포기한다면, 리비아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이 정권이 혁명이나 대중봉기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기 아주 어렵다. 카다피 대령이 만약에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비참한 죽음을 맞지 않았을 것이다. 핵 보유국 리비아가 있었다면, 2011년 초 혁명이 시작되었을 때 카다피 대령은 혁명세력을 무자비하게 진압했을 것이다.
서방국가 외무부는 큰소리로 비판하는데, 서방국가 국방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혁명세력은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고, 카다피 대령은 2018년에도 온갖 기행을 저지르면서 리비아를 다스릴 것이다.
만약에 모택동 시대 중국이 핵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등소평은 1989년 천안문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를 무자비 하게 진압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등소평이 탱크를 동원하려고 할 때, 미국 국무성은 ‘공산당정권이 탱크를 동원한다면 미군이 군사적 개입을 살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할 수도 있었다. 등소평은 이 경고를 무시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라크도 마찬가지다. 1982년 이스라엘 전투기가 이라크의 핵개발센터를 폭격하지 않아서, 후세인 대통령에게 핵 버튼이 있었다면, 후세인은 2018년에도 자신의 사치스러운 궁전에서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결국 북한 결정권자들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없다. 그들은 바보들이 아니다. 그들은 카다피 대령과 후세인 대통령의 전례를 열심히 공부한 것이 확실하다.
대북 압박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다르게, 북한 엘리트 계층은 심한 압박을 받을 경우에도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기근이 시작되어서 수십만 명이 굶어 죽는 상황이 벌어져도, 그들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수십만 명의 아사자를 안타깝게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체제유지를 위한 대가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희생을 감수할 것이다. 북한 정권은 수십만 명의 아사자들을 ‘조국수호 전쟁의 전사자’라고 선전할 수도 있다.
남북교류는 북한을 점차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북한 엘리트 계층이 제일 위험하게 생각하는 것은, 외부생활에 대한 지식의 확산이다. 기타 공산주의 국가에 비해도, 북한은 공산권에서도 전례가 거의 없는 수준의 정말 엄격한 쇄국정책과 감시를 하고 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북한에서 다른 지역으로 마음대로 갈 수 없고, 외국여행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라디오 수신기는 주파수가 고정되어 있다. 외국 출판물은 엄격히 금지된다. 심지어 ‘같은 사회주의 나라’인 소련이나 동권의 서적도, 미국이나 프랑스서적과 똑같이 취급 받았다. 인민들은 매주 정치학습을 해야 하고, 촘촘한 감시를 받고 있다. 그들은 감히 체제에 대한 비판을 입 밖으로 낼 생각을 할 수조차 없다.
공산국가는 모두 북한과 같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 사람들의 상식과 다르게, 소련에서 자유가 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소련 사람들은 북한을 볼 때 진짜 미친 독재국가라고 생각했고, 반감이 많았다. 북한이 발행한 김일성 우상화 선전 잡지는, 많은 소련 가정에서 웃음거리로 쓰였다. 70-80년대 소련에서, 북한은 ‘살아있는 스탈린 시대’를 보여주는 미친나라였다.
소련인구의 4분의 1이 BBC나 미국의 소리 방송을 들었다. 방해전파가 있기는 했지만, 매우 형식적이었다. 소련에서 이사를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국내여행은 자유롭게 아무 때나 갈 수 있었다. 외국 여행이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가능했다.
미국 출판물이라고 해도, 공산권을 비판하는 내용이 없는 책은 자유롭게 서점에서 팔렸다. 소련 인민들은 부엌이나 술집에서 개인적으로 공산당 서기장이나 정치를 마구 비판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동구권은 소련보다 자유가 더 많았다. 1980년대 필자가 김일성 종합대학에 유학할 당시 얘기를 나눴던 북한 사람들은 ‘소련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다.
북한 정권이 이만큼 편집증적인 쇄국정책과 주민감시를 하는 것은, 그들이 단순히 미치광이나 편집증환자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 확실히 근거가 있다. 북한 정권은 50년대부터 자신들이 ‘세상에 부러움없이 잘 사는 나라’라고 끊임없이 선전해 왔다. 물론 엘리트 계층은 처음부터 이 주장에 대해 의심이 있었고, 지금 평민들까지 이 주장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