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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노년

무한 경쟁의 산업화 시대, 살아남기 위해 경주마(競走馬)처럼 앞만 보고 치닫던 지난 나의 인생은 너무도 긴장한 가운데 열의와 끈기로 지켜냈다. 

살아남느냐 죽느냐, 이러한 여건에서 한가하게 문학 등 다른 분야를 넘겨다 볼 여지도 없이. 기계의 작은 부품처럼 50년이라는 세월을 올곧게 돌고 돌았다. 

그나마 불모지였던 조선 산업을 세계 제1위라는 역사를 다시 쓰는 대열에서 작은 파이지만 기여를 하였다는 공적을 남기고 일흔 넷에 그 자부심을 가슴에 안고 엔지니어라는 옷을 벗었다. 

그리고 이주한 딸이 있고 파란 자연이 있어 살기 좋다고 손짓하는 캐나다로 건너갔다. 그곳 문인회와 인연이 되어 글을 쓰는 법을 배우게 된다. 

지난 엔지니어 생활에서는 각종 기술 분야의 글은 써서 국내 신문 잡지 등 매체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1965년 스웨덴에 가서 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그곳의 소감을 부산의 국제신문에 특파원이라는 이름으로 기행문도 기고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정작 문학이라는 글은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는데 이외로 스스럼없이 여기에 몰입되면서 읽고 쓰고 발표하는 시간이 점차 늘어가게 되었다.

 캐나다 문인회에서 문학 작품 신인상을 수상하고 서울 수필시대에서 등단이라는 영광을 얻는다. 

내친김에 넓은 문학의 광장인 서울에 돌아와서 폭넓게 활동을 하다 보니 어언 세월이 저만치 멀어진 망구순(望九旬)을 지나친다. 

지금에 이르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나”인 것을 알게 되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얽매이지 말고 나를 사랑하고 나를 보살피라는 이치도 알게 된다. 문학이 나의 삶에 주는 교훈을 중요성까지 보태어 다음과 같이 나를 이끌게도 한다.

첫째 문학은 인간에게 기쁨 뿐 아니라 위로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도 알려 준다. 약자, 실패자,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가 동병상련의 교감을 통해 위로를 안겨 주고 사람 보는 눈도 키워 준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기만의 삶을 살 수밖에 없지만 문학으로는 다른 사람의 삶을 책으로 읽고 배우며 경험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알 수 있는가 하면 사람들을 보는 눈도 뜨게 한다. 

톨스토이는 <부활>에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까지 제시하고 있으니... 

둘째 문학이 사람을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알게 된다. 지금은 서로 바빠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조차 마련하기 어렵다. 

설령 만나게 되더라도 그 사람 내면에 들어있는 생각과 고민, 철학까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문학 속 인물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내면의 철학, 생각 등을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위하의 <허삼관 매혈기>나 <인생>은 매우 비참한 인간의 이야기를 통해서, 또한 자녀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결국 자녀도 불행하고 본인도 비참하게 죽어간다는 인생사의 책으로 인간의 깊은 내면세계를 간접적으로 느끼고 배우게 된다.

 셋째는 노년의 삶은 한마디로 감각의 상실, 즉 감수성이 고갈되는 과정인 것이다. 감각이 둔해지고 입맛도 없어지는가 하면 귀도, 눈도 점점 나빠진다. 

고정관념에 빠지고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데 이런 면들을 문학이 이를 개선시킨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약화되고 상실되는 감각들을 문학의 성취감이란 힘으로 개선시킨다는 것이다. 

모든 예술이 나름대로 그런 역할을 한다지만 문학노년은 홀로 목표를 세워 혼자 몰입해서 꾸준히 읽고, 쓰면서 다듬어 작품을 일궈낸 성취감이야 말로 바로 젊음과 인생을 함께 회복시키는 동력이 되지 않겠는가. 

 넷째는 문학이 지혜의 보고(寶庫)인 것으로 알게 된다. 

문학 한 작품 한 작품 속에서 사실 얻는 게 너무 많은 것이다. 인생사를 다루는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이러면 안 되는구나, 이것이 자녀를 망치는구나’ 그렇게 느끼는 것이 우리의 교훈이자 체험으로 각인이 된다. 

또한 기행문을 접하면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역사, 종교적인 문제점 등을 여행경비 한 푼 들지 않고, 책 한 두 권으로 소상하게 알게 된다. 

이렇듯 문학으로 광범위한 지식, 사고력의 확장, 인간에 대한 이해와 내 삶을 반듯하게 점검하는 계기가 되어 우리의 삶을 보다 풍요롭고 지혜를 쌓게 되는 것이다.

삶을 체험하면서 숱한 파고를 넘으며 심오한 통찰력과 깨달음을 갖게 된 노년에게 문학은 청소년이 아니라 중년을 넘어선 노년, 특히 100세 시대의 문학노년은 이러한 문학을 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도 많아서 그것을 즐기고 국내외에 위상을 진작시키기엔 아주 좋은 기회인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등을 지금 당장 읽어 보세요. 불운과 고난 앞에서 한 늙은 어부가 보여주는 장엄하고 영웅적이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를 간결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글귀가 가슴에 와 닿으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머리를 한 방 펑! 칠 터이니...

음악과 미술사(美術史)에는 어린 나이에 천재가 많이 나오지만 문학은 젊은이에게 기대하기 어려우니 기나긴 삶 속에서 많은 체험과 통찰력을 지닌 문학노년 여러분들께 천부적으로 주어진 과제라 여기시고 지금 바로 우리나라 문학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일로 정진하시길 소망(所望)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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