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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이 얼마나 우수한

하림산책 - (박하림/전 (주) 휴비츠 고문, 수필가)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 언어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한데 일본어로 쓰인 문학작품이 노벨상을 받은 지가 오래 전인데 우린 아직까지 강감무소식이다. 표현력에 있어 영어나 일어와 비교가 안 될 만큼 풍부한 어휘를 갖춘 한글이 그 진가를 발휘하지 못한 것은 멀리는 일제 식민지배 때문이고 가까이는 국력 때문이다.

 필자는 한글전용을 고집하는 맹꽁이가 아니나 한글 우수성이 세계에 알려져 언젠가 영어처럼 국제공용어로 쓰일 날이 올 것이라는 신념을 고수하고 있다. 

나랏말끼리 그 우수성을 비교한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왠지 변함없이 국제어로 쓰이는 영어와 한글을 비교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필자는 한 때 한국인으로서 국어선생을 못하고 영어선생을 하였으니 딴에는 작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오래 동안 한글과 영어와 일어를 공부하며 관심 있게 비교를 해 왔다. 그야말로 취미로 한 것이다. 그 덕분에 필자에게는 맛있고 묘한 표현을 나타내는 관용어구 비망록이 여러 권 생겼다. 보통 수십 년씩 묵은 것이라 문내가 날 정도로 낡았다. 

그러나 가끔 그것들을 펼쳐 보는 재미는 여전히 쏠쏠하고 그 뛰어난 어의나 표현에 절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마중물, 식칼궁둥이, 어처구니, 열쭝이, 풀치다, 반거들충이, 배동, 푸쟁, 반살미, 조치개, 툭탁치다, 꽃다지, 도사리, 에멜무지로, 앙구다 등등 많기도 하다. 

필자의 영어실력이 모자라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저런 어휘의 함의를 다 살려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가령 ‘마중물’의 경우 그 어의란 조금도 어렵지 않은데 비해 함의에 잘 맞는 영어단어는 찾을 수가 없다. 그 뜻을 나타내는 영어표현은 ‘fetch the pump’가 전부다. ‘fetch’는 가서 데려온다는 뜻이 있는데 아마도 펌프에서 물을 자아낸다는 의도로 그렇게 표현하나보다. 그러나 마중물처럼 한 단어로 표현한 것은 없다. 물로 물을 끌어올리는 표현을 마치 마중을 나가는 물로 표현한 것은 영어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마중물을  직역을 한다면 ‘go out to meet water in pump’라고 긴 설명문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싱겁기 짝이 없는 표현이다. 

영어속어 관용 어구에 ‘shoot the breeze’라는 표현이 있는데 뜻인즉 ‘수다를 떤다.’든가 ‘허튼 소리를 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breeze라는 단어에 수다라든가 허튼소리라는 뜻은 없다. 산들바람, 싸움, 탄재, 쉬운 일, 무서워 주춤 하다는 뜻이 전부다. 저 관용구를 보고 수다를 떤다는 의미를 상상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우리말로는 ‘수다’만 떠올려도 ‘떤다’는 동사가 바로 연상돼 문장을 완성하기가 매우 쉽다. 수다라면 말하는 게 아니라 떤다고 해야 제격이고 실감이 난다. 

그런 맛이 영어에는 없다. 떤다는 자리에 생뚱맞게 ‘shoot’가 앉았으니 그 단어의 뜻 중에서는 ‘말을 퍼붓다’는 게 가장 유사한 어의에 해당한다. 

그러나 수다에 어울리는 맛은 별로 나지 않는다.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하는 ‘잔소리꾼’을 영어로는 ‘backseat driver 직역하면 뒷좌석에 앉은 운전수’라고 하므로 그 관용구를 배우지 않는 한 그 참뜻을 알기 어렵다. 한글로는 ‘잔소리’만 이해해도 ‘하다, 늘어놓다,’는 자연스럽게 뒤따라 나온다. 물론 한글로는 장황하게 설명해야하는 용어가 영어로는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억울하게 당하고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한글로는 뭐라 하는지 모르겠으나 영어로는 ‘doormat’이라고 한다. 현관입구나

방 앞에 까는 깔개는 허구한 날 밟히고 밟혀도 마치 무골충이처럼 말없이 견뎌낸다는 의미로 쓰인다.

오래전에 일본으로 출장을 갔을 때였다. 명색이 동종기업의 이사인데 일본 측 접대 과장의 태도가 매우 불손했다. 일본인의 한국인에 대한 우월의식에다 그가 영국의 명문대 출신이라는 자부심 때문인 것 같았다. 필자는 이튿날 한 모임에서 간단한 스피치를 할 예정이었는데 일본인들은 영어컴플렉스가 심해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존경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해서 연설문을 영문으로 작성해서 밤새 달달 외웠다. 그리고 이튿날 그 교만한 과장을 옆에 앉혀 놓고 유창한 영어로 연설을 했다. 사원들 모두가 

경외하는 박수를 보냈고 그 과장은 필자더러 미국 어느 대학에 유학했느냐고 물어왔다. 필자는 웃기만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만약에 일본인이 진정한 조상의 나랏말인 한글의 진가를 맛본다면 아마도 문화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글의 우수함이 저렇게 간단하면서도 함의 맛이 뛰어난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말을 일상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풍조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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