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고래까지도 춤추게 만든다는 말이 과장되었음을 알면서도 수긍하는 것은 그것이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고려 말기의 문신인 이제현의 《역옹패설》에 의하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해서도 안 되고 다 미워해서도 안 된다. 좋은 점은 좋아하고 나쁜 점은 미워하는 것만 못하다. 내가 부끄러움을 지니고 있는데 남들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기뻐해서는 안 되고, 내가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데 남들이 나를 헐뜯는다고 해서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남에게서 받는 칭찬을 칭찬이라고 덥석 받을 게 못되고, 받은 칭찬도 그냥 즐겨서는 안 된다는 이치에 저절로 머리가 주억거려진다.
요새는 칭찬이 홍수를 이루는 시대다. 칭찬은 언제부턴가 무소불위 적 존재가 되어 드디어 저리도 육중한 코끼리까지 춤추게 만든다고 한다. 만병통치약에다 행복의 마중물이란다. 칭찬의 효과가 가히 만능 적이란다.
한데 어린아이 같은 의문이 있다.
왜 코끼리에게 칭찬을 하게 되었으며, 또 그 칭찬으로 무얼 얻으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코끼리를 잘 모르고 코끼리가 춤추는 의미가 어떤 의의를 품고 있는지 알지 못한 탓인지 그런 의문을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육중한 체구를 가진 코끼리로 하여금 굳이 어색하게 춤을 추게 할 필요가 무어며, 설사 칭찬을 알아듣고 춤을 춘다한들 대체 그로써 무얼 얻게 된다는 건지 의문이라는 사실이다. 신기함을 강조하려는 나머지 칭찬을 먹인 코끼리를 등장 시켰나 모르지만 코끼리가 춤추는 게 오죽 꼴불견이랴 싶은 것이다.
칭찬의 남발과 과소비는 오히려 그것의 진가를 떨어뜨리고 있다. 칭찬수요가 폭발해 칭찬거리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칭찬할 필요도 없고 칭찬 받을 처지도 못되는 많은 사람들은 칭찬의 소외지대에 산다. 칭찬에 너무 굶주리면 사는 재미가 없다.
그렇다고 비타민 제재처럼 칭찬 알약이라도 만들어 공급할 수도 없는 노릇, 천상 스스로 칭찬 받을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
칭찬을 받을 때는 그저 기분 좋다는 생각만으로 덥석 받는 것은 진정한 즐거움이 뒤따르지 않는 방식이다.
만약 자신이 어떤 부끄러움을 지니고 있다면 남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기뻐해서는 안 되며, 내가 부끄러움이 전혀 없는데 남들이 날 헐뜯는다고 해서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칭찬을 할 때 진정이 아닌 인사치례로 하면 받는 이가 감동하지 못하고 아첨하기 위해 마음에 없는 칭찬을 하면 공허하여 그 뿌리가 받는 이의 감사 속에 내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칭찬도 지켜야할 금기가 있다.
그 하나는 칭찬의 남발이다. 남발하는 칭찬에는 진정성이 결여되기 십상이다. 칭찬이 헤퍼지면 아무런 감동도 없는 립 서비스로 전락한다.
다른 하나는 지나친 칭찬이다. 과장된 칭찬은 오히려 욕이 되고 부담이 된다. 또 비현실적이라 순수성이 결여되기 쉽고 저속한 아부로 둔갑하기 쉽다.
또 다른 하나는 칭찬이 그저 칭찬으로 끝나면 안 되는 것이다. 칭찬이 윈윈효과를 내려면 뭔가 합리적인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칭찬이 말 인심 쓰는 것만으로 그치면 그 효과도 반감되고 권위가 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