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민주정치의 본산인 것은 무엇보다 정당 간에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와 국민을 위한 최상의 정치가 무엇인가를 찾고자 토의하고 합의해 정부로 하여금 그것을 실천하도록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자유롭게 토론을 하도록 의사당 내에서의 발언에 면책특권을 주고 있다. 그러므로 의원 개개인의 발언은 매우 중요해서 진실 되고 생산적이며 국가이익을 지향해야 함이 마땅하다.
또한 발언 내용이 책임성이 있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한데 국회로부터 들려오는 토론의 장을 보면 때로 유치하고 무책임하며 무지한 억지와 거친 폭언이 예사로 난무함을 알 수 있다. 해서 오죽하면 국회의원을밑바닥으로 비하하거나 국회무용론이 세간에 왜자한지 모른다.
우연히 국회 한 위원회에서 야당의 여당저격수로 이름난 여성의원이 대통령 비서실장을 매섭게 몰아치는 장면을 시청하게 되었다.
야당의원의 질문(?)이 끝나자 비서실장은 답변은 하지 않고 격한 감정을 실어 야당의원이 다분히 신상에 관해 까발린 내용이 심히 유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피차에 발끈하여 감정적으로 비난의 말이 오가다 위원장의 제지로 비서실장이 엉거주춤하게 사과하는 것으로 더 이상의 격돌은 피했다.
그런데 시청하고 있던 필자는 저들이 대체 무슨 목적으로 충돌했던 가 그 근본목적을 짐작조차 못해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후에 들어 알았지만 그 쟁점은 비서실장의
과거편력으로 보아 북한 김일성주석이 주창한 <주체사상> 추종자가 틀림없으니 현직에 어울리지 않다는 취지였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른바 그런.‘주사파 主思派’ 출신이 여럿 청와대 비서실에 참모로 포진해 인사의 편향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데 말한 이가 무엇을 듣고자 했으며 답하는 이가 무얼 말해야 하는지 그 진짜 핵심은 사라진 것이다.
제대로 듣는 이들 조차도 일방적인 비판과 답변은 않고 감정적 대응만 한다는 인상을 받았을 뿐이다.
저들의 무의미한 설전 때문에 놓친 매우 심각한 사실의 검증이 무산된 것이다. 주사파에 대한 사실규명이다. 그 하나는 이념적으로 주사파였던 비서실장이 아직도 그 이념을 추종하고 있는지 여부와 김일성주체사상에 대한 견해가 어떤지의 확인이며, 다른 하나는 청와대에 포진한 주사파 출신 참모들이 얼마나 되며 야당의원이 지적한 정도로 그 사상적 편향 때문에 우려해야 되는지에 책임 있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왜냐하면 주체사상은 대한민국에서 불법화된 이념이며 주사파는 반국가적 북한추종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비서실장이 아직도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그와 동지인 주사파가 비서실에 포진하고 있다면 그들의 인사권자인 대통령한테 무거운 책임이 있으며 이 나라의 운명이 실로 위태롭다 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대통령의 이념이 진정 그가 손을 얹고 서약한 헌법의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의 자 야당의원이 망신을 주는 선에서 물러선 게 유감이며 의구심의 파장만 일으켰을 뿐 용두사미 격으로 물러선 질의자의 자세 또한 책임성이 결여되었다. 질의가 뭔가 사건성이 강한 정보나 자료를 근거삼아 문제를 제기하거나 질타하거나 때로는 망신을 주는 식으로 이용되는 것은 의회민주주의에 반하는 권한의 남용이다.
더욱 해연한 것은 답변자가 자신이 더는 주체사상의 추종자가 아님을 밝혀 막중한 권좌에 앉은 정당성을 명쾌하게 천명해 국민의 의혹을 불식시켰어야 했는데 감정적 대응으로 회피한 아리송한태도였다.
그날 질의의 의미의 심각성이 대통령비서실장이 여전히 주사파캠프에 숨어 있는지 여부를 규명하려는 것이었다면 그날의 질의응답은 시청한 국민을 바보로 아는 우스꽝스러운 쇼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