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작업을 하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꿈속인 듯 도마소리에 잠을 깼다. 똑 똑 또르륵 똑똑 며느리가 칼질하는 도마 위에서 경쾌하게 들리는 소리가 잠을 깨운다.
얼마 만에 느껴 보는 초가을 추억의 아름다운 소리인가!
111년 만이라는 긴 폭염을, 생전 처음으로 느껴본 긴 여름날의 괴롭고 힘든 시간들도 지나갔다.
며칠 째 풀벌레 소리에 잠을 깨어서 눈을 지그시 감고 풀벌레 소리를 감상해 보면서 가을이구나! 실감하던 차이다.
중학 삼년을 100리를 기차통학을 했다. 새벽4시면 일어나야 했다. 나는 언제나 엄마의 도마소리에 눈을 뜨곤 했었다. 그 때는 엄마의 도마소리가 알람인 샘이다.
아_ 얼마 만에 느껴 보는 엄마의 소리인가! 갑자기 엄마가 그리워져서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적셔진다.
그렇게 엄마의 정성을 먹고 살아 온 우리들은 잊혀 져 간 소리에서 엄마를 기억하고 찾고 있다.
삼년 전 97세에 떠나신 내 엄마가 몹시도 그립다. 칠순을 두해를 넘긴 내가 추억을 품고 그 옛날을 그리워하고 있다.
요즘 퇴행성 척추협착증이 도져서 매일 같이 병원에 가서 기계로 허리 잡아당기는 것과 물리치료와 침술치료와 근육주사 등으로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다.
첫 진료시간인 9시에 예약을 하고서 8시 50분 쯤 가며는 벌써 대여섯 명의 노인들이 기다리고 있다.
백세시대라고 야단이지만, 어떻게 백세까지 살까 걱정이 많다. 하나 같이 그렇게 오래 살고 싶지 않다고들 말을 한다. 생명이 길어지다 보니 퇴행성 환자들로 넘쳐 난다.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진다. 모두들 걱정하는 소리가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며 오래 살게 될까 봐 걱정하는 말이 이구동성(異口同聲)이다. 나 또한 그렇다.
병원에서 나누는 얘기들을 들어 보면, 다들 노인부부만 살던지 아님 혼자서 산다고들 한다.
나는 며느리와 23년 째 함께 산다고 하니까 세상에 그런 착한 며느리가 있느냐면서 뭣 하려 같이 사냐며 편하게 혼자 산다고들 한다.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 버렸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때론 섭섭할 때도 있지만, 나는 매일 아침 아들의 잘 다녀오겠습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하는 인사를 보양(保養)으로 먹고 산다.
오늘 아침에도 며느리는 제 남편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 새벽에 일어나서 도마질을 하는 것이다.
남양주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로 출 퇴근하는 교사인 남편의 도시락을 두 개 씩 싸서 전철역 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 와서는 한잠 자고 나와서 준비하고 저도 학원을 운영하는 곳으로 출근을 한다.
나도 하는 일이 있다. 뒤처리며 소소한 살림을 돕는다.
이렇듯 아름답게 들려오는 은은한 도마소리도 있고, 때론 퉁탕거리는 도마소리도 산발적으로 들려오는 소리도 그렇게 도마소리처럼 음을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족 간의 화음이지 않겠는가!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