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춘 액티브 시니어 칼럼
이형종 박사 (본지 객원기자/한국액티브시니어협회 시니어 연구소장)
“차장으로 승진한지 10년이 되었어요. 영업현장에서 일할 때 실적도 오를 때는 직장에 다니는 보람이 있었지요. 그 후 본사 인사부로 이동하여 열심히 일하면서 매년 인사시즌만 되면 은근히 승진을 기대했죠. 그러나 이제 이 회사에서 승진하고 급여가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어요. 내년부터 임금피크제가 적용되는 나이가 되어 급여도 줄어든다고 생각하니 회사에 다닐 의욕이 전혀 나지 않아요.”
S기업에서 근무하는 조명호씨(53세)의 말이다.
조명호씨의 심리상태를 전문용어로 커리어 플래토(career plateau)라고 말한다. 커리어 플래토란 직장에게 찾아오는 정체상태를 말한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은 40대 이상 관리자들이 그 이상 승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등산할 때 가파른 경사구간을 지나면 정상에서 갑자기 평평한 장소가 펼쳐지는 모습에 비할 수 있다.
40대가 되면 커리어 플래토에 빠진 중간관리자 많다. 40대가 되면 자신의 능력과 보직의 한계가 보인다.
조직의 피라미드를 올라가는 길이 얼마나 험하고, 그 길에 누가 있고 누가 없을지도 대략 짐작한다.
과장과 부장으로서 실적이 있지만 그 이상 승진과 승격을 바랄 수 없다. 경영실적이 한계에 도달하고 성장세를 멈춘 회사가 많다. 신규사업이 적다 보니 보직도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다. 회사마다 중장년 인력이 대폭 늘어나고 차장과 부장 자리는 한정되어 있어 모두가 관리자로 승진할 수 없다.
승진목표에 도달했다고 느끼는 사람이 의욕을 잃는 것이 문제다. 자신의 승진 가능성이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면 이전처럼 활기차게 일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대로 똑같은 일을 정년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의욕도 없고 낙담한 상태로 계속 근무할 가능성이 있다.
입사 후에는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고 배우며 성장했다.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으면서도 능력이 성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40대부터 업무능력이 성장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목표는 달성할 수 없을 것 같다.
자신감이 상실되고 업무에 정체감을 느끼며 회사에서 성장목표를 잃어버린다. 회사의 커리어는 그 시점에서 멈추고 커리어 고원에 도달한다. 결과적으로 능력 자체도 떨어진다.
어떤 일에도 인간의 능력과 의욕은 한계가 있다. 어느 시점에서 자신의 능력에 만족해버린다.
능력의 한계를 느끼면 의욕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커리어 플래토에 빠진다. 직원 개인의 문제로 방치할 경우에는 조직자체도 정체되기 쉽다. 조직으로서 직원의 커리어 의식을 잃지 않도록 어떤 대책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관리직이 되지 못해도 보람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승진을 대신할 동기부여 수단이 필요하다.
60세 정년까지는 계속 일할 수 있는 시대다. 승진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도 길어진 직장생활에서 활기차게 계속 일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과제다.
경영학적 관점에서 직원들이 커리어 목표와 발달 욕구를 갖고 업무를 추진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커리어 플래토 상태에 빠진 관리자는 의욕이 떨어져 적극적인 업무자세를 기대할 수 없다. 조직관점에서 보면 업무 생산성이 떨어진다면 어떤 대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커리어 플래토 현상은 체념에 지배된 정신상태다. 이제 더 이상 승진은 바랄 수도 없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거나 능력을 개발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심리상태에 빠져 정체되어 있으면 커리어 기회를 생각하지 못하다.
마음 놓고 일하고 싶은 부서도 없고, 직장인으로서 정체성마저 상실하면서 벽에 부딪힌다.
이렇게 꽉 막힌 상태를 타개하려고 안이한 전직을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많은 관리자들은 “나는 아직 직장에서 뭐든지 잘 해낼 수 있다” 고 생각하며 과거의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회사의 대책도 중요하지만 결국 관리자 자신의 장래 커리어 방향과 관련된 문제다. 커리어 플래토 상태에 빠질 때를 대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예를 들면 직무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회사의 다른 커리어에 적극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 일시적으로 급여가 내려갈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도전을 통해 보람을 얻고 성장을 실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퇴직 후의 커리어로 연결할 수 있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회사에서 활약할 장소가 없다고 생각하는 관리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관리자는 회사 이외의 장소에서 능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다른 장소에서 활약할 장소가 있을 수 있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유아기와 사회”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발달 싸이클을 8단계로 나누어 제시했다.
인간은 각 단계에서 성취할 발달과제가 있다고 했다. 인생단계마다 과제를 성취한다면 계속 성장하고, 사회에서 역할과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에릭슨이 말하는 중년기의 발달과제는 세대성(generativity)이다. 세대성이란 다음 세대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는 것을 말한다.
중년기는 말 그대로 인생의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지금까지의 인생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시기다. 그리고 지금까지 얻은 교훈을 다음 세대에게 남겨두고 도움을 주려는 의식을 가진 연령층이다.
관리직 자리를 얻을지 못할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현장의 리더로서 후배들의 멘토로서 다음 세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기꺼이 담당하여 새로운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식할 수 있다. 그 때 커리어 플래토는 성장하지 않는 정체기가 아니라 오히려 인생을 개척하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