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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거북이’도 사라졌다

최중탁 미국 골프 티칭프로(USGTF)의 재미있는 골프이야기 34
 

호사다마(好事多魔), 골프나 잔치처럼 즐거운 일에도 반드시 어두운 부분이 없지 않고 때로는 많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골프는 잔디밭에서 친구들과 어울리는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운동이다. 그런데 코스에서 메뚜기를 본 적이 있는가.  분수 치솟는 아름다운 연못에 물고기를 본 적이 있는가. 이 한 마디 질문으로 골프에 대한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골프장 페어웨이나 그린이 자연상태의 풀밭이라면 한여름에는 메뚜기와 곤충들이 몰려 다닌다. 연못에는 수생곤충이나 개구리 물고기들이 우글거려야 정상이다.어쩌다 아침이슬에 지렁이들이 그린 위로 나오기도 하지만  몇 분 안에 죽고 만다. 농약 때문이다.

요즘 골프장에서 사용하는 농약은 무색무취 제품들이다. 아무리 독성이 강해도 골퍼들이 느끼지 못하도록 개량된 수입제품들이다. 가끔 라운드 중인데도 농약을 사정없이 퍼부어대지만 골퍼들의 눈에는 그저 물뿌리기나 영양제 살포로 보일 뿐이다.

골프장용 농약은 살충제, 제초제, 살균제로 대별된다. 주로 사전예방 시약으로 쓰이며 부분적으로 사후방제용으로도 쓰인다. 7~8월 장마 전후에는 살포빈도가 높으며 골프장 면적의 60%가 살포대상이다. 특히 이때의 그린은 하루 수 차례씩 농약에 적셔놓는 것과 같다.

현재 골프장의 농약 사용량과 농약 잔유량에 대한 기준은 농진청이 분류한 고(高)독성의 금지농약만 제외하면 어떤 제품이라도 양과 횟수에 관계없이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 무제한으로 살포하면 저독성도 고독성과 동일한 피해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한여름 그린에서는 햇볕이 나면 농약수분이 보이지 않는 분수처럼 증발하기 시작한다. 즉 그린에 서 있으면 안개분수대 위에서 농약물로 샤워하는 것과 같다.“약으로 연명하는 중환자처럼 잔디는 농약으로 산다고 보면 된다”라는 어느 그린 키퍼의 말이 생각난다.

농약으로 발생하는 병은 임파 및 혈액암과 불임이 가장 많고 자폐아 출산율이 높다고 한다. 캐디 10년하면 애기를 못 낳는다는 말이 낭설이길 바란다. 

수 년 전까지도 아줌마들이 ‘닌자거북이’처럼 안전망을 지고 일렬횡대로 늘어 앉아 페어웨이 잡초를 뽑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농약은 이 거북이들도 사라지게 했다. 비싼 인건비 대신 손쉽게 잔디전용 제초제를 살포해 버리기 때문이다.

여름 어느 날 서해안에 위치한 한 링스 골프장에 갔더니 페어웨이에 메뚜기들이 우루루 떼거리로 날아 다녔다. 헤져드에는 우렁이와 물고기 새끼들이 바글거렸다. 코스에 잡초들도 많았었지만 진짜 자연의 모습을 보고 너무나 흐믓했다. 그 골프장을 다녀 온 후로는 소위 잔디관리가 잘 되어 융단같은 골프장은 ‘죽은 골프장’이라는 선입관이 꽉 박혀 버렸다.

잡초가 좀 있고 맨땅이 좀 보이면 어떤가. 풀벌레 한 마리 안 보이는 ‘농약밭’ 또는 ‘농약에 절여진 융단’보다 벌레 곤충들과 함께 자연상태의 잔디밭을 걷는 것이 더 기쁘지 않겠는가.

미국 팜스프링 사막골프장에 가면 온갖 생물들을 볼 수 있다. 곤충들을 잡아먹는 새떼들이 모여들어 그린은  온통 새똥 밭이다. 야생토끼들도 골프장 잔디를 뜯어 먹고 있다. 이들을 먹이로 삼는 최상위 포식자 퓨마 밥켓까지 다함께 어울려 골프를 치게 되어 있다. 철새들은 해져드 옆 그린 위에 버티고 앉아 쉬면서 공을 쳐도 비켜 주지도 않는다.

정말 환상적인 골프낙원이다.

우리처럼 인위적 잔디관리도 안 되어 있지만 대부분 세계적 명문코스들이다. 

그린용 외래종 잔디는 우리 환경에서는 태생적으로 병충해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반복사용으로 인한 농약내성이 생겨서 살포빈도와 양을 늘리는데 문제가 커지고 있다.

이런 점을 알고 있다면 골퍼들은 오염예방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골프를 즐기면 된다.

멋도 좋지만 피부노출이 심한 패션은 피하라. 땀으로 확장된 땀구멍 모공 피부 숨구멍 등을 통하여 피부점막으로 농약이 스며들기 쉽다. 팔토시는 자외선 차단용이지만 피부의 농약오염 차단효과도 많다. 라운드후 에어건으로 옷과 신발을 털고 입은 옷들을 곧장 세탁해야 한다. 

여름철 그린에 오래 머물지 않는 것도 좋다.

골生골死,골프에 살고 골프에 죽는것은 좋지만 농약오염으로 죽는다면 억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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