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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폭행 막은 고교생들 “우리 할머니 같아서 참을 수 없었죠”

김경문·하철민·김준엽군, 할머니 병문안 가던 길에 노인 폭행 목격 세명이 범인 제압·촬영·신고 등 분업해… 20일 피해 노인 찾아 인사
20일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에서 김경문, 하철민, 김준엽군(왼쪽부터)이 묻지마 폭행 피해를 본 할머니를 찾아 인사하고 있다.
친구 사이인 김경문, 하철민(이상 울산기술공고 3년), 김준엽(울산공고 3년)군은 지난 9일 오후 9시 50분께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경문 군이 병원에 계시는 할머니 병문안을 가는 길에 친구 2명이 동행한 것이다.

마침 금요일 밤이어서 마음이 들뜬 절친 3명은 재잘거리며 편도 4차로변을 걸었다. 그리 늦지 않은 시각이어서 거리에 사람도 적지 않았다. 순간 어디선가 비명이 들렸다. 도로 건너편 골목에서 나는 소리였다.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고 느낀 세 친구는 도로를 건너 가까이 다가갔는데,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젊고 건장한 남자가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를 폭행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바닥에 누운 채 남성의 허리를 붙잡고 “손자뻘 되는 놈이 어떻게 이러냐”며 절규하고 있었다.

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떠올린 경문 군이 곧장 달려들어 남자를 말렸다. 철민 군은 나중에 논란이 생길 일에 대비해 스마트폰으로 현장을 촬영했고, 준엽 군은 112에 신고했다. 절친들답게 호흡이 잘 맞았다.

남자는 경문 군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하면서 저항했다. 도망치려고도 했다. 학생들은 물리적으로 맞서지 않으면서도, 남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꼭 붙들었다.

잠시 후 경찰이 출동했고, 할머니는 아들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인적사항을 남긴 절친 3인방은 예정된 병문안을 갔다. 이후로도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이들의 용감한 선행은 열흘이 넘어서야 화제가 됐다. 당시 사건이 노인을 상대로 한 ‘묻지마 폭행’이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경문 군은 “할머니를 뵈러 가는 길에 우리 할머니 같은 분이 무자비하게 맞고 계신 모습을 보고 참을 수가 없었다”면서 “친구들에게 무슨 말을 할 겨를도 없이 뛰어들어서 말렸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당시 영상 촬영을 맡았던 철민 군은 올해 8월까지만 해도 복싱 선수였다.

중학교 3학년 때 소년체전에서 동메달을 땄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전국체전에서 헤비급 동메달을 땄다. 대학에 진학해 물리치료와 작업치료를 전공하려고 복싱 선수의 꿈을 막 접은 터였다.

철민 군은 “할머니를 때리거나 욕설을 하며 도망가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는 참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힘으로는 자신 있었지만)똑같이 상대를 때릴 수는 없으니 잡고만 있었다”고 말했다. 준엽 군은 “당시 현장을 목격한 분들이 좀 있었는데 선뜻 나서서 도와주시는 분들은 없었다”면서 “그런 일에는 다 함께 나서서 도움을 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절친 3인방은 20일 당시 피해를 본 할머니를 찾아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는 “학생들이 정말 고맙다. 앞으로도 좋은 일을 많이 해달라”며 감사 인사와 덕담을 건넸다.

울산시교육청은 이들 학생 3명에게 표창을 수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울산 울주경찰서는 거리에서 일면식도 없는 할머니(77)를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상해)로 A(25·남)씨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A씨는 술을 마신 뒤 귀가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근처 골목에서 폐지를 정리하던 B씨에게 다가가 말다툼을 벌였다. 이후 B씨 얼굴을 때리고 몸을 밀치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A씨는 경찰에서 “할머니가 혼잣말하면서 시비를 건다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김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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