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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문턱에서 조용히 불러보는 가을 노래 두편

박목월의 ‘이별의 노래’와 양중해의 ‘떠나가는 배’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별의 노래(박목월 작시,김성태 작곡)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천에 눈이 쌓인 어느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떠나가는 배(양중해 작시,변 훈 작곡)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오! 떠난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임 실은 저 배는 약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 나오라 애슬픔 물결 위로
오! 한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끊이 사라져 나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저 수평선을 향하여 떠나가는 배
오! 설운 이별 임 보내는 바닷가를
넋 없이 거닐며 미친듯이 울부짖는
고동소리 임이여 가고야 마느냐

몇 주 전까지도 강한 햇살에 국화향기 그윽하더니, 어느새 소슬바람으로 낙엽을 뿌리며 가을이 슬그머니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벌써 겨울이 성큼 문턱에 와 있는 12월이다.

매년 이맘때 초겨울에는 사람들의 깊은 감성을 자아내는 많은 시와 노래들이 낭송되고 불려진다.
어떤 문학작품이라도 그 작품을 작가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문학적 심미안(審美眼)도 필요하겠지만 그 작품의 탄생배경이나 동기를 알면 가장 쉽고 또 깊이 이해할 수가 있다.

따라서 위의 두 작품의 탄생배경이나 숨겨진 스토리를 안다면 흥미를 더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작품에 대한 감동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스토리에 자신을 주인공으로 대입시켜서 실제 작가와 똑같은 감정이 되어 볼 수있기 때문이다.

두 작품은 국내외 수많은 성악가들이 애창하고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다 사랑하는 가곡들이다.
주인공 박목월(朴木月 본명 박영종, 1916~1978)은 우리 문학을 가장 빛낸 청록파 시인 중 한 사람이며 서울대와 한양대에서 국문학과 교수를 지냈다.

박목월 작사 김성태(金聖泰, 1910~2012) 작곡 ‘이별의 노래’는 가을을 주제로 하는 음악회에서는 필수 레퍼토리다. 
‘10월의 어느 날에’ 는 가을의 시작을 알리며, 한가을을 노래하는 ‘그리운 금강산’ 은 많은 실향민들의 향수를 달래준다. 막바지 늦가을 계절곡 ‘이별의 노래’는 슬픈 사연과 추억이 있는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곡이다.

그런데 ‘이별의 노래’는 작사가 박 목월 시인 자신의 애틋한 사연을 담은 자서전적인 배경에서 태어난 작품으로 알려져서 더 흥미롭다. 김성태 작곡가도 이러한 가사의 배경을 알고 작곡을 했기에 작사가의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세간에 알려진 이 작품의 배경을 요약해 본다.

목월은 대구 피난시절부터 그의 시를  좋아하는 대학생 H양을 알게 되었다. 1953년 휴전이 되자 그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강단으로 다시 돌아왔다.

교회목사로 부유한 H양의 부모는 자녀들의 서울유학을 위해 흑석동에 사놓은 집이 있었다. H양도 이 집으로 돌아왔다.
H양은 서울에 와서도 목월을 자주 찾아 왔다.그녀의 마음은 이미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불타 올랐고 목월도 같은 감정으로 변해 갔다.

1954년 초봄부터 둘은 더 가까워졌으나  40대 나이의 목월은 죄책감에 고민에 빠졌다. 친했던 Y시인을 통해 그녀를 설득해서 결별을 수 차례 시도해 봤으나 그녀의 불같은 열정은 막을 수 없었다. 
그녀는 순수하게 사랑할 권리를 막지말라며 펑펑 울었다.

그 해 초가을 목월은 서울에서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H양과 제주도로 밀월을 가서 동거를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주생활 4개월째 될 무렵 찬바람 눈보라 맞으며 목월의 부인이 제주에 와서 둘이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 온 것이었다.

여느 여인네들처럼 머리채 잡고 싸우려 온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 앞에서 부인은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달픈 객지생활을 위로하면서 생활비와 두 사람이 겨울을 지낼 수 있는 한복 한 벌씩을 싼 보따리를 내놓았다.

H양은 목놓아 울고 목월도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며칠 후 H양의 부친이 찾아와 설득했고 3일만에 그의 손에 이끌려 제주항으로 떠나고 만다.목월도 항구까지 뒤따라 갔다.

결국 이들은 결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서울로 떠나기 전 날 밤 목월은 ‘이별의 노래’ 라는 시를 지어서 그녀에게 주었다.

돌아온 목월은 서울 효자동에서 하숙하며 이별의 아픔을 되새기는 몇 편의 시를 더 썼다. 부인은 목월을 한 마디 탓도 하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다른 한 편의 명작 ‘떠나가는 배’(양중해 작사, 변 훈 작곡)도 우리 곁에서 늘 들려오는 명가곡이다.
이 곡도 박목월의 ‘이별의 노래’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동일한 사연과 배경에서 탄생된 작품이다.

목월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H양이 부친의 손에 끌려 제주항구로 갈 때 목월이 그 뒤를 따랐었다. 
제주에서 국어교사이자 시인이던 양중해 시인(梁重海, 1927~2007)도 이들과 동행했었다.

어깨가 축 쳐진 채 부둣가에 서 있는 목월과 여객선을 보고 온 양중해는 그 날 저녁 시 ‘떠나가는 배’를 썼다. 같은 학교 음악교사였던 변훈(邊焄1926~2000)에게 이 시를 전해서 불후의 명곡 ‘떠나가는 배’가 탄생했다.

여주인공 H양이 살아 있다면 이미 80대의 할머니일 것이다. 이 노래가 귓전에 울릴 때마다 그녀의 심정이 어떨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 노래는 작사 작곡이 제주에서 이뤄진 명곡이라서 ‘제주의 노래’라고도 한다. 현재 제주항 여객선 부두옆 탑동 해변공연장 잔디밭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최중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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