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5일 대한노인회 ‘3선 허용 정관개정안’을 다루는 정기총회에서 회의를 주재하던 중앙회장이 찬반을 묻는 기립표결을 즉석에서 제안하자 “이 중요한 안건을 기립표결로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비밀투표로 하자”고 발언해 대의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주인공이 누구였었는지는 사람이 많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었다. 본인은 밝히기 꺼려하지만 그 장본인이 바로 차영식(84) 부천시소사지회장이다.
차 지회장은 국방대학교 군사전략 기획과정을 졸업하고 군 요직을 두루 거친 뒤 육군 대령으로 예편했다. 군 감찰업무를 보면서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일을 처리해 온 것이 노인회에서 노인복지의 수혜대상을 선정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차 지회장은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차 지회장은 노인일자리 수를 크게 늘리는 등 실적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남들 하는 대로 만 하되 업무의 질은 남들과 달라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말한다.
그는 또한 “A노인은 일 안하고 돈 받아 간다는 소리가 들려서는 안 된다”며
“주관적인 생각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꼭 받아야 할 사람이 제 몫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고를 낭비하지 않고, 복지전달 체계를 왜곡시키지 않는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래서 소사지회는 크게 내세울 것이 없단다.
하지만 창립 40년이 된 부천시 소사지회는 지난해 3월 31일 기념비적인 일이 있었다. 4억3000만원을 들여 산뜻하게 리모델링을 하고 나서 부천시 어울마당 별관 구 보건소 건물로 입주하게 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원래 이 보건소 건물은 20년 전에 소사지회 사무실로 쓰던 것이다. 20년 전 보건소에 건물을 넘겨주고 소사지회는 범박동 소사노인종합복지관으로 사무실을 옮겼었다. 소사노인종합복지관의 옹색하기 짝이 없는 35평 사무실에서 그동안 지회업무를 추진해 왔으나 20년 만에 제 집을 찾아와 지금은 6배 이상 넓은 1, 2층 240평을 널널하게 쓰고 있다.
방음시설이 잘 돼 장구를 쳐도 밖으로 소리가 새나가 이웃에 피해를 줄 염려가 없는 대강당을 비롯해 세미나실은 물론이고, 훌륭한 대기실 구실을 하는 1층 북 카페, 탁구장, 한궁 세트까지 비치한 소사지회는 이제 남부러울 것이 없다.
재학생 180명의 노인대학이 지회의 자랑거리가 된 배경에는 이처럼 훌륭한 강당 등 쾌적한 시설도 한 몫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최은희 노인대학장을 비롯한 우수강사진과 노래교실, 라인댄스, 기공체조, 웃음레크 등 다채로운 강의 프로그램 등 3박자를 갖췄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월요일은 태극권 동아리, 목요일에는 민요, 장구동아리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유명 합장단 지휘자가 진행하는 가곡교실은 인기가 대단하다. 호흡법에서 자세까지 섬세하게 지도하는 지휘자 덕분에 가곡교실 참여 노인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가곡, 동요를 부르면서 학창시절의 아련한 향수에 젖을 수 있어 감성적으로도 만족도가 대단히 높단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소사지회 노인대학 성공의 열쇠는 역시 입소문이란다. 차 지회장은 “젊은 노인들이 많이 몰려오고, 이들이 경로당 회원으로 등록을 하다 보니 평균연령이 높은 경로당에 ‘새로운 피’가 수혈되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귀띔한다.
소사지회 감사 2년, 부회장 6년을 거쳐 소사지회장이 되고 현재 경기도연합회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차 지회장을 지근거리에서 수년간 보필한 최해근 사무국장과 직원들은 ‘우리 회장님은 과묵하고 포용력이 있는 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인이 되면 말은 덜하고, 많이 듣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 차 지회장은 항상 ‘경청’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직원들도 4년간 이직자 한 명 없이 마치 ‘형제들이 함께 일하는 것’ 같은 사무국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
차 지회장은 서병춘 오정지회장, 고승언 원미지회장과도 원래부터 각별한 관계였지만 2016년 7월 구 폐지 이후 더욱 돈독한 우정을 과시하게 됐다.
또한 차 지회장은 군인연금 받아서 생활하면서도 지회장이 된 후 매년 사비 500만원씩 지회에 내놓아 지회 운영비에 보태기도 한다.
S교회 장로이기도 한 그는 범박동 H아파트에 14년째 거주하면서 단지 내에서 어린이들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어린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는 않지만 14년간 ‘나는 아파트 몇 동에 산다’고 먼저 인사하다 보니 그 꼬마들이 이젠 모두 성인이 됐다. 차 지회장은 “1, 3세대 소통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과 나이를 초월해서 알고 지내는 것”이라며 지난 14년을 만족해 한다.
차 지회장은 회원들을 만나서 “전철, 식당에서 나이 가지고 젊은이들에게 갑질 하지 말자”고 강조한다. 젊은이 앞에 가서 “다리가 아픈데 자리를 좀 양보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면 벌떡 일어서지 않을 젊은이가 어디 있겠느냐”며 “요즘에는 지하철에서 호통 치는 노인들 기사가 뜸해져서 좋다”고 미소 짓는다.
김용환 기자 oldage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