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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디, 함께 해야 할 라운드 동반자

최중탁 미국 골프 티칭프로(USGTF)의 재미있는 골프이야기 39
3년 전 스크린 골프존이 전국 캐디 53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가장 힘든 점으로 응답자의 79.3%가 매너 없는 고객이며 사례로는 45.5%가 경기지연 언어폭력 성희롱이라고 답했다.

이런 고객들의 심리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1인당 3만원을 줬으니 본전을 뽑겠다는 보상심리와 돈으로 인격까지도 살 수 있다는 인식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라운드 중 진상행위 사례는 수 없이 많다.

캐디 유니폼에 이름표가 가슴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모자나 카트 등 가슴 이외에 다른 위치로 옮겼다. 손가락으로 이름을 가르치며 신체를 접촉하려 하기 때문이다.

외모를 보고  진한 농담으로 캐디의 마음을 떠보는 못된 매너는 너무 흔하다.  

15년 전 한 지인은 캐디가 마음에 들었던지 라운드 내내 끝나고 밖에서 저녁 먹고 술 한잔 하자고 치근됐다. 

캐디요금 외 별도 팁을 듬뿍 쥐어주며 시간과 장소를 약속했다.한껏 기대에 들뜬 이들은 사우나 후 온갖 화장품과 향수까지 뿌리고 서둘러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한 시간 반을 기다리고서야 어리석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골프카트 앞자리 운전석과 옆자리 사이에 없던 칸막이를 나중에 설치한 골프장들이 있다. 옆자리에 고객이 타면 계속 밀착하며 신체 접촉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비가 와도 전투는 한다며 티업을 한 후 2~ 3홀만에 폭우가 쏟아지자 포기했지만 9홀 캐디피를 내야 한다. 실랑이 끝에 만원짜리 몇 장을 빗물 고인 길바닥에 던지고 가버린다. 비에 젖은 돈을 주울 때 눈물 안 흘리는 캐디가 있겠는가.

5만원권이 생기기 전 캐디피 10만원을 수표 한 장으로 주었는데 캐디가 수표 뒤에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기재를 부탁했다. 고객은 당돌하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도난 수표를 받은 경험이 있었던 캐디의 정당한 요구였다. 수표 사용 매너도 0점짜리 고객이다.

캐디피를 줄 때 정중하게 봉투에 넣어서  주도록 봉투가 비치된 곳이 많다.

그러나 캐디들은 이런 권고사항을 싫어한다. 가끔 만원짜리 한 장을 빼고 봉투를 건내는 악질들이 있기 때문이다. 고객 앞에서 봉투 속 현금을 꺼내서 세어 볼 수도 없고.

숏펏 놓쳤다고 채로 그린을 내려찍거나 욕설을 하며 클럽을 멀리 던져 버리고는 캐디에게 주어 오라고 버럭소리 지르는 진상도 있다. 심각한 내기 중 잘 맞으면 내 탓 안 맞으면  캐디가 화풀이 대상이다. 부부싸움하고서 집 강아지에 발길질 하는 진상과 같다.

지연플레이는 캐디들을 가장 가슴 졸이게 한다. 그 이면에는 말 못 할 많은 불이익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 라운드 평균시간 5시간 내외, 한 팀이 지연 시키면 연쇄적으로 다른 팀 고객들의 짜증을 유발하고 골프장 측의 영업적 손실을 끼친다. 캐디는 생계와 직결되는 패널티 벌당을 받는다. 청소 등 허드렛일로 그날 하루 수입은 허탕이다. 지연되면 캐디가 앞장서서 달린다고 한다. 봄이 되면 골프는 뒷전 봄나물 채취에 정신이 팔려 늦장플레이 하는 여성들도 있다. 

지난 10월 24일 인천 서구의 한 골프장에서 50대 여성이 캐디를 폭행하고 경찰에 고소당했다. 라운드 후 골프백을 차량에 싣다가 차량에 흠집을 내어 큰 배상을 한 경험이 있어서 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골프백을 실어주는 건 법적으로 캐디의 고유임무가 아니다. 단지 서비스 차원에서 임의로 실어줄 뿐이다.

캐디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는 감정노동자다. 무조건 손님을 즐겁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떤 문제라도 일차적으로 캐디를 꾸짖고 잘못한 것이 없어도 먼저 사과해야 한다.

당신한테 설움 받으며 도우미 일을 하고 있지만 그들은 당신 보다 더 큰 야망을 품고 있을 수도 있다.

캐디생활을 거쳐 당당히 프로선수로 데뷔 하기도 한다.

전설의 원로골퍼 고 구옥희 전 KLPGA 회장, 2000년대 초 필드여왕 김은영 선수도 7년간 캐디를 했다. 올 4월 KPGA 전가람은 자기가 캐디로 일하던 몽베르 골프장에서 당당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저렴하고 톡톡 튀는 디자인으로 젊은 골퍼들을 사로잡는 '달비골프'패션의 조경화 회장도 6년간 캐디를 했었다.

캐디도 엄연한 성인인격체요, 열심히 살아가는 생활인이다. 당신 앞에 머리 숙이고 봉사를 하고 있지만 당신보다 더 훌륭한 마음과 품성 그리고 아름다운 생각을 하며 일하고 있을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그들이야 말로 프로정신으로 일하는 감정노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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