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33·행정고시 57회)과 정부 사이에 청와대의 적자국채 추가발행 압박을 둘러싼 공방이 가열된 가운데 신 전 사무관이 3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신 전 사무관은 이날 고려대 인터넷 커뮤니티인 ‘고파스’에 올린 ‘마지막 글입니다’라는 글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채무비율 향상(상향)을 위해 적자 국채를 추가 발행하는 게, 아무리 미수라 하더라도 문제가 아니라고요? 최고 결정자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고, 그 후 청와대에서도 추가 발행하라 하는데요?”라고 반문하면서 부당한 압박이 있었다는 자신의 주장을 옹호했다.
반면에 정부는 청와대의 강압적 지시는 없었고 협의해 결정했다며 신 전 사무관이 주요 정책의 전체 의사결정과정을 아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크게 왜곡시키고 국민을 호도하는 것이라며 팽팽히 맞섰다. 양측의 입장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청와대의 의견제시가 정당하다는 의견과 부당한 개입이라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청와대의 적자국채 발행요구 정당한가? 부당한가?
신 전 사무관은 구랍 29일부터 유튜브와 고파스 등에 올린 동영상과 글에서 2017년 11월 대규모 초과 세수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적자 국채발행을 요구하는 등 무리하게 개입했으며 기재부는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1조원 규모의 국채매입을 갑자기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기재부는 이에 대해 적자 국채 추가발행과 관련해 청와대도 의견을 제시했으나 강압적 지시는 전혀 없었고, 청와대와 협의를 거쳐 기재부가 적자 국채를 추가 발행하지 않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고 반박했다.
신 전 사무관은 이에 맞서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어 2017년 11월 23일 당시 적자 국채를 추가로 발행하는 계획이 담기지 않은 12월 국고채 발행계획 보도자료 취소를 요구해 적자 국채를 추가 발행하도록 압박한 인물로 차영환(현 국무조정실 2차장) 당시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을 지목했다.
차영환 2차장은 이날 설명자료를 통해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으로서 국채발행에 대해 기재부와 긴밀히 협의한 것이며 압력을 넣었다는 주장은 맞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결국 연말 경제 상황과 금융시장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 협의 끝에 기재부의 결정을 받아들여 국채 추가발행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적자 국채 발행과 관련해 청와대의 의견제시가 부당하지 않다는 의견과 부당하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조영철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신 전 사무관이 기본적으로 ‘이자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 국가 채무 비율을 낮춰야 한다’는 논리뿐”이라며 “하지만, 초과 세수가 발생하면 무조건 국채발행을 줄여야 하는 것은 아니고, 다양한 고려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 전 사무관은 세금이 많이 걷혔으니 이자 비용을 줄이는 게 기재부 임무고, 당연히 국채발행을 줄여야 하는데 청와대 쪽에서 국채발행을 늘리는 것이 어떻냐는 의견을 가져와서 부당하다는 것”이라며 “왜 부당한가”라고 반문했다.
차현진 한국은행 부산본부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부가 갑자기 국채 매입(바이백) 계획을 취소한 것을 비판한 신 전 사무관이 “자기 일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바이백(buy-back)은 정부가 일시적으로 남는 돈으로 국채를 만기 전에 되사는 조치인데, 보통은 바이백한 만큼 다시 국채를 발행한다”며 “따라서 바이백을 취소하건 취소하지 않건 국가채무비율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반면 청와대가 재정업무에 관해 참모의 기능을 벗어나 부총리와 대통령의 업무협의를 차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최광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초빙교수는 “상식적으로 국채라는 것은 세수가 모자랄 때 발행하는 것이다. 세수가 예상보다 많이 걷혀서 여유 자금이 있는데 또 다른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국채발행과 관련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청와대 참모들이 기재부를 압박했다는 주장과 관련해 “재정업무에 관한 한 청와대는 참모의 기능으로, 부총리가 대통령과 업무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정책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며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의 권위)을 업고서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靑 KT&G 사장교체 시도… "정부 보유 몫 이상으로 주주권 행사 문제”
신 전 사무관은 그간 올린 동영상과 글에서 청와대가 KT&G 사장을 교체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정부가 기업은행을 동원해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KT&G는 민영화된 기업으로 사기업”이라며 “민영화된 기업의 사장을 바꾼다는 것은 삼성이나 LG의 CEO를 교체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책적으로 민영화된 기업, KT&G의 운영에 문제를 가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합법적이고 국민 누구에게나 공개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했던 것이 아닐지 반문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시된 KT&G의 지난 9월 말 현재 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10.45%(의결권 있는 주식수 기준)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이다. 이어 중소기업은행이 7.53%, 퍼스트이글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가 6.63%, 블랙록펀드어드바이저스가 6.59%를 각각 보유했다.
중소기업은행의 최대주주는 51.8%의 지분(의결권 있는 보통주 기준)을 보유한 기획재정부다.
신 전 사무관이 민영화된 사기업 KT&G의 사장교체를 청와대가 시도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지분구조상 정부가 발언권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는 아니다.
2대 주주인 기업은행의 최대주주로서, 기업은행이 보유한 7.53%의 지분만큼 발언권이 있기 때문이다.
신 전 사무관의 친구라고 밝힌 시민단체 L회계사는 고파스에 올린 글에서 “정부가 가진 몫에 한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지분이 있다면 당연히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문제는 가진 이상으로 행사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수의 지분으로 전체를 지배하는 게 문제라면, 정부가 가진 지분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문제”라면서 “이번 일을 통해 더욱 논의가 됐으면 싶은 건 정부가 가진 지분을 어떤 방식으로 행사하는지도 논의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가진 주주권을 국민이 뽑은 청와대가 행사하는 게 맞는지, 공무원이 행사하는 게 맞는지, 국민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위원회가 하는게 맞는지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이한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