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임금이 오를 줄 알았는데 삭감이라니요. 일하기 싫으면 나가라더군요.”
전북 전주시 덕진구 한 아파트에서 18년 동안 일해온 A(74)씨는 지난달 30일 정든 일터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짐을 싸야 했다.
아파트 관리소장이 새해 '임금 책정표'라며 내민 종이에는 믿기 힘든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난해보다 근로시간이 줄고 월급이 20% 이상 삭감돼 있었다.
새 임금 책정표대로라면 설비 담당은 임금이 지난해보다 22.6%, 전기 담당은 19.6%, 관리원 2명은 8.2% 깎인다.
야간수당이나 기타수당은 없다.
관리소장은 지난해보다 근로시간 2∼3시간 줄면서 자연스럽게 임금 삭감으로 이어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경비원 직업 특성상 경비실에서 일부분 숙식을 해결하기 때문에 근무시간이 아니더라도 주민 민원을 처리해야 한다.
근무시간은 줄어도 일은 종전과 다름없이 해야 한다는 의미다.
관리소장은 아파트 주민 대표의 뜻에 따라 A씨에게 계약 연장 의사를 물었다.
한마디로 ‘깎인 임금이라도 받으려면 계속 일하고 싫으면 떠나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부당한 처사라고 판단한 A씨는 결국 짐을 쌌다.
A씨에게는 그나마 선택지가 있었지만, 12년여 동안 일해온 나머지 경비원 2명은 ‘계약 만료’를 이유로 근무복을 벗었다.
6개월 단위 촉탁 계약직인지라 항의조차 할 수가 없었다.
A씨는 “18년 동안 일해온 직장에서 나오고 나니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자괴감이 들었다”며 “임금을 깎고 근무시간을 줄인 이유도 듣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도 이렇게 내치지는 못한다”며 “18년 동안 몸 바쳐 일한 곳에서 내쫓기니 모든 게 허무하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 아파트 경비원들이 속한 용역업체 관계자는 “아파트 주민 대표가 경비원들이 나이가 많아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으면 하는 의사를 밝혔다”며 “두 번째 요구는 경비원들 근무시간을 줄여달라는 것이었다. 사실 삭감된 금액을 받고 일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계약해지만은 막으려고 했는데 대표의 요구가 거세 어쩔 수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주민 대표 B씨는 ‘적법한 계약 만료였다’는 항변과 함께 임금 삭감의 이유로 주민 관리비 인하를 들었다.
B씨는 “촉탁 계약직으로 있는 사람들이고 계약이 만료돼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며 “법에 어긋나지 않는 선에서 결정했는데 뭐가 문제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임금 삭감에 대해서 “(깎은 경비원 월급만큼)주민들 관리비를 줄여주려고 했다. 꼬치꼬치 캐묻지 말라. 대답할 의무 없다”고 전화를 끊었다.
강현주 기자 oldagenew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