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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진화

夏·林·散·策- 박하림(수필가/전 (주) 휴비츠 고문)
폭력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삼사십 년 전만 해도 폭력이라 하면 술 취한 남편이 마누라를 구타한다든가, 불량배가 각목을 휘둘러 피를 흘리게 만든다든가, 취객끼리 싸우다 상해를 입히는 식으로 물리적으로 폭행하는 양상이었다. 

과거에는 요새처럼 지나친 성희롱을 성폭행이라 동네방네에다 알리고, 교사가 훈도하느라 매를 친 것을 폭행이라 고발하며, 시위대가 기물을 부수거나 공권력에다 주먹질을 예사로 해대는 식으로 폭행을 일삼지 않았다.

때문에 과거에는 폭력이라고 하면 비인간적이고 막장 인생처럼 여겼다. 

 어느 때는 폭력이 낭만과 어울릴 정도로 미화된 적도 있었다. 의리의 주먹 사나이를 사랑하는 순애보가 인기였을 시절이다.

비록 대로 상에서 주먹질로 싸우는 폭력배일지라도 당당하고 의리를 목숨처럼 여기는 사나이임을 자처했는데 요새 이상하게 진화된 폭력을 보노라면 황당하고 충격적이다.

그 무질서함과 교활함과 무책임성과 뇌화부동성과 빠른 전염성이 장난이 아니다. 
 우선 그 빠르고 강력한 영향력의 확산이 가히 치명적이다. 

허위정보 가지고도 죄 없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매장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라서 폭력이 마치 소음권총 같다.  

폭력 바이러스는 치외법권 지대 같은 SNS라는 숙주에 숨어 기생하는 교묘함이 있다. 
당당한 폭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정체를 숨긴 채 음해의 비수를 꽂는 비겁한 암살자다.

요새 폭력은 이악스러워 인터넷통신수단에 기생하며 정체를 숨긴 채 그것에 몰입해 사는 청년들한테 입속의 혀와 같이 아부하여 제 잇속을 챙긴다.

 입엔 떡볶이에 삼겹살이고 귀에는 팝송이고 눈에는 스마트 폰이며 손은 트위팅이나 게임놀이에 매여 사는 젊은이들에게 그것들은 분신이고 친구고 우상이며 종이다. 그러므로 저렇게 살면 깊이 생각하고 두 번 생각하며 멀리 내다볼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 폭력은 변형된 구실로 기생한다.

 저 진화된 폭력 바이러스가 제일 만만하고 신나게 전이돼 점령한 곳이 말이다. 
말은 기하급수로 증식해 홍수를 이루고 요상한 언어를 낳았으며 광속으로 퍼져 때와 장소와 양식을 불문하고 언로를 오염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아주 교활하고도 무서운 말과 메시지라는 탄알을 무한정으로 장전하고는 어른이고 선배고 대통령이고 스승이고 유지인사고간에 비위에 맞지 않는다 싶으면 사정없이 쏴 대서 공격하기를 예사로 하게 되었다. 

말로 사회계층간의 갈등을 일으키고, 말로 아무나 매도하고, 말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심지어 매장하고, 말로 사회혼란을 유발하고, 말로 영웅을 급조해 낸다.

저런 말 매나 말 난타는 다름 아닌 언어의 폭력이다. 일방적이기 때문이고, 말의 권위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격적이기 일쑤여서 어떤 형태로든 상처와 손해를 입히기 때문이고, 아무리 잘못된 매도나 유언비어였어도 사과하거나 배상을 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며, 언재나 숨어서 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저런 교묘한 폭력보다 더 폭력적이고 더 교활하며 더 다루기 힘들고 더 무책임한 의사소통 수단은 없었다. 

 디지털시대의 도래와 지배영역의 확산으로 지금 디지털 형 불구자나 장애자가 점점 늘고 있다. 

저들은 디지털언어에는  도사이지만 온기(영혼)의 교환이라는 의사소통에는 서툴다. 자판 두들기는 데 이골이 난 손가락으로 게임세계에서 마왕은 때려눕힐 수 있을지는 모르나 제 아버지 한문 함자는 쓰지 못하며 동시 한 편을 지어낼 수가 없다. 

클릭이나 터치로 원하는 정보를 얻는 데는 도사일지라도 정보나 상식을 굳이 기억할 필요가 없는 머리는 갈수록 기억력이 쇠퇴한다. 

GPS가 아니면 길을 찾아갈 수가 없고 게임에 중독되면 세상살이가 다 재미가 없다. 저런 진화는 일종의 재앙이다. 저런 디지털지진아들이 마치 멘토처럼 제멋대로 말의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이거 참 야단났다. 저 폐해를 어찌 순화시킬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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