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제왕적 대법원장’ 양승태 구속… 개혁동력 될까

‘사법의 사유화’ 인정한 셈… 기존 체제 대폭 손질 불가피 외부기관 참여 ‘사법행정위’ 도입 재논의… ‘개혁’ 속도 낼 듯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서울 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꼽혀 온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4일 결국 구속되자 법원은 “70여년 사법부 사상 가장 치욕적인 일”이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법조 3륜’으로 불리는 판사, 검사, 변호사 중에서도 최고의 엘리트로 자부해 온 법원이 국가의 ‘3부 요인’까지 지낸 전직 사법부 수장이 형사사건 피의자로 구치소에 수감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의’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사법부가 행정·입법 등 다른 권력과 이익을 주고받는 ‘재판거래’를 해왔다는 검찰 수사결과를 법원 스스로 상당 부분 인정하면서 사법개혁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은 검찰이 영장에서 제시한 범죄혐의 상당 부분이 소명됐다고 법원이 판단했음을 뜻한다.

이번 영장 발부를 두고 “대법원장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현 사법체계가 언제든지 ‘사법의 사유화’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체제라는 점을 법원 스스로가 인정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위 ‘제왕적’권한을 갖는 대법원장이 인사권 등 사법행정권 전반을 독점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사법부 독립은 물론 법원 내부의 재판독립까지도 쉽게 침해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이 대법원에서 진행 중인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 일본 전범기업 측 대리인인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와 재판의 진행상황 등을 사적으로 논의한 혐의는 대법관마저도 대법원장에 의해 재판독립을 침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사유화하고 전횡을 휘둘렀다는 의혹이 사실로 ‘소명’되면서 사법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 판사의 관료화, 줄 세우기 인사 구조 등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으로 꼽히는 사법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관료적 사법행정의 구조적 개혁’ 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대법원장이 독점하는 사법행정권한을 정부와 국회 등 외부기관이 추천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사법행정위원회’를 신설해 맡기는 방안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방안은 위원 구성에 정부와 국회 등 사법부 외부기관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법원 주도하에 외부위원을 구성하는 ‘사법행정회의’ 방안보다 진일보한 개혁방안으로 평가받는다.

당초 국회에서 유력한 개혁안으로 논의됐지만,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과 함께 법원이 자체 개혁방안으로 사법행정회의 신설안을 내놓으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방안이다.

하지만 최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사법행정회의만으로는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견제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잇따라 제기되고, 급기야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대법원장의 권한 축소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논의가 다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와 함께 판사 관료화의 해결방안으로 거론되는 ‘법원행정처 탈(脫)판사화’와 ‘고등법원 부장판사 폐지’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두 방안 모두 김명수 대법원장이 내놓은 사법개혁 방안으로, 현재 점진적·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법원은 법원행정처 탈 판사화를 위해 28일로 예정된 올해 정기인사부터 행정처 소속 판사인원 3분의 1을 감축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해 인사부터는 사법연수원 25기 이하 판사들에 대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인사를 하지 않고 있다.

두 방안 모두 일부 판사들이 반대하고 나서면서 법원이 본격적인 제도 시행에 나서는데 소극적이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도입 반대 의견이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활발히 논의되다 잠시 소강상태인 ‘특별재판부 도입’ 논의도 재점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사법농단 의혹 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 형사절차에 관한 법률안’은 다수의 전·현직 고위 법관이 연루된 이 사건의 재판 공정성을 위해 심리를 전담할 특별재판부와 특별영장판사를 두는 내용이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의 반대로 소관 상임위인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지난해 11월 12일 이후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법안통과 필요성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이 보수성향 판사들의 집결로 이어질 경우 사법개혁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수사에 사실상 협조한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법원 내부의 비난 여론이 극심해질 경우 그가 추진하는 사법개혁도 만만찮은 반발에 부닥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한미 기자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