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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잘 견뎠다’팔순에 시인된 할머니들

영화 ‘시인할매’·‘칠곡 가시나들’
“사박사박/장독에도/지붕에도/대나무에도/걸어가는 내 머리위도/잘 살았다/잘 견뎠다/사박사박”
(윤금순 할머니의 시 ‘눈’)

꽃분홍색 옷을 입은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다. 시를 연필로 꾹꾹 눌러쓰고 있다.
5일 개봉한  ‘시인할매’ 27일 개봉하는 ‘칠곡 가시나들’은 전남 곡성과 경북 칠곡의 까막눈 할머니들이 팔순 넘은 나이에 글을 배워 시인으로 거듭나는 내용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할머니들은 마을 도서관에서 글을 배우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솔직한 시를 써 내려간다.
글은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다. 80살이 넘어서야 마침내 글을 쓸 수 있게 된 할머니들의 시에는 그동안 표현하지 못한 삶의 애환이 녹아있다. 

이들의 시에는 어떠한 내숭도 없다. ‘오래 살고 싶다’고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는가 하면 위트도 가득 담겨있다. 할머니들은 글을 배우고 시를 쓰면서 내면의 기쁨과 슬픔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칠곡 가시나들'의 한 장면.[인디플러그ㅣ더피플 제공]
‘시인할매’의 주인공들은 지난 2016년 첫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발간했다.

시작과 동시에 시대적 상황으로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지 못했음을 알려주는 두 영화는 단순히 시를 쓰는 할머니들의 모습만을 비추지는 않는다. 오히려 조용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이들의 일상을 비춘다.

먼저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는 할머니, 노래자랑 예선에 나갔다가 떨어져 실망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관객은 나의 할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타지에 사는 아들에게 처음 편지를 쓰는 할머니도 있다. 누구에게는 너무나 평범한 이런 일들이 그동안 글을 몰랐던 할머니들에게는 80 평생 처음인 특별한 경험이다.

할머니들의 일상을 비추는 순간 가부장제와 고정적인 남녀 성 역할의 모습이 언뜻 보이면 답답함도 느껴진다. 명절 음식은 아들이 아닌 며느리가 준비하거나 남편 사망 후에도 시집 제사를 할머니가 챙기는 장면이 나오는 순간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지 못하게 막았던 현실이 여전함을 깨닫게 돼 씁쓸해진다.

아름다운 곡성과 칠곡의 시골 풍경은 눈을 사로잡는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사계절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다.
‘시인할매’는 이종은 감독, ‘칠곡 가시나들’은 ‘트루맛쇼’ 등을 연출한 김재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변용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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