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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위로하심

3,400여 년 전 바사제국 땅에서 예루살렘 쪽을 바라보며 한없이 울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써 바사(페르시아)에 끌려와 포로국민으로 높은 관직에 오른 왕의 측근 ‘느헤미야’입니다.

그는 모국에서 온 지인으로부터 백성들이 능욕당하고 예루살렘 도시와 성이 훼파된 비참한 소식을 듣고 울며 비통에 잠깁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백성들이 겪는 환란은 과거 이스라엘 열조들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닫고 민족의 죄를 회개하고 민족을 살려내기 위한 중보기도를 합니다.  

11~12월에 시작한 기도가 이듬해 3~4월이 되기까지 간절히 드렸는데 응답으로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은 신임하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해서 성벽을 재건할 수 있도록 특례를 베풀고 도움을 줍니다.

그는 귀환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모아 성벽을 재건하고 정치적 자위권을 갖춘 국가가 이뤄지게 합니다. 그의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느헤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에게 회복으로 임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뼈아픈 식민통치 하의 역사가 있습니다. 일제침략에 나라와 주권 이름까지 다 빼앗기고 민족이 유린당했던 지난 36년간의 세월입니다. 당시 도무지 희망이라곤 찾을 수 없던 시절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일어나 절망 가운데서도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대한민국은 자주 독립국가임을 선포해 나갔습니다. 

이 땅에 기독교가 처음 전파되었을 때 교회는 애국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인식되고 많은 민족지도자를 배출하여 교회의 지도자가 나라의 지도자였습니다. 독립협회, 기독교절제회, 학교 등의 단체들이 교회 영향 아래 결성되었습니다. 이런 영향은 삼일 만세운동에서 절정을 이루어 33인의 민족 대표 중 16명의 대표가 기독교 교인이었습니다. 우국지사들이 교회로 모여들었고 사회에서 기독교인은 곧 애국자라는 인식이 정착됐습니다.

3.1운동에 앞장선 유관순 열사도 신앙의 가정에서 자라 순회선교사인 샤프(A. H. Sharp)를 통해 미션스쿨인 이화학당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하나님 사랑하는 것과 나라 사랑은 일치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새벽마다 예배당에서  위해 기도했고 만세를 부르기 전날에도 “하나님, 이제 시간이 임박했습니다. 이 땅에 자유와 독립을 주옵소서.”하며 간곡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3.1절 날이 올해로 꼭 100년째 됩니다. 우리나라는 100년 전에 비해 상상을 초월한 발전의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들불처럼 전국에 퍼졌던 삼일독립운동이 당시에는 성취결과가 없는 것 같았으나 26년 후에 해방되어 자주독립국가가 되는 축복을 받게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희생적인 인물들이 있었기에 주어진 열매입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은 공인정신을 가진 희생적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느헤미야 총독이 자신의 안일을 뒤로하고 눈물로 기도하며 고국을 재건해 갔던 것같이, 3.1 만세운동의 열사들이 충직하게 목숨 걸고 애국했던 것같이 신앙심과 애국심을 겸비하고 국가의 부름에 응하고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들로 살아야겠습니다.

3.1절 10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며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느1:9)이 대한민국 땅이 되기를 열방 앞에서 소망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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