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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교복

글의 향기- 윤 강(인문학강사 ? 수필가)
삼십 년도 더 지난 우리 누나 이야기다. 지금 생각해도 당황스럽고 웃음만 나오는 이야기. 1975년 내가 중학교 2학년이고 누나가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을 앞둔 며칠 전 이야기다. 

요즘 여고생들이야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당시 여고생들의 교복은 참으로 손이 많이 가고 불편한 옷이었다. 위에는 까만 셔츠에 아래는 까만 후리아 치마. 거기가 까만 코트. 까만 셔츠에는 풀 먹인 하얀 카라를 달았고 까만 스타킹을 신었다. 

내가 이렇게 누나의 교복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침잠이 많은 누나는 늘 나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교복을 제대로 갖춰 입고 등교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면서도 졸던 누나였으니 오죽할까.

요즘이야 스타킹이나 레깅스니 온갖 좋은 양말들이 많지만, 그 당시는 아이들 타이츠 같은 팬티가 없는 두 짝의 양말이 전부였고 내복이라야 빨간색 무릎이 튀어나오는 것이 전부였던 시절이다. 스타킹을 신기 위해서는 내복을 입고 내복 아래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후 맨 종아리에 스타킹을 신는 것이었다.

그 날도 이미 누나는 늦었고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아침밥은 포기하고 교복 입기에 들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곁에서 상의 교복에 풀 먹인 하얀 카라를 달고 있었고 아래는 내복을 잘 걷어 올린 후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그 지경에도 누나는 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밥상 앞을 왔다 갔다면서 밥을 먹다가 스타킹을 신다가 수선을 떨고 있었다.

엄마가 달아준 하얀 카라가 달린 상의 교복을 입고 날이 추우니 거기에 다시 까만 코트를 입고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엄마와 나는 안방으로 와서 식은 아침밥을 먹었고 나는 방학 중이라 다시 방에 가서 조금 더 자기 위해 누우려는데 방바닥에 까만 누나의 교복 치마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그럴 리가 없다 싶어 다시 봐도 분명 누나의 교복 치마였다. 혹시나 해서 엄마에게 물으니 누나의 교복치마는 하나뿐이란다. 잠꾸러기 누나는 교복 치마를 입지 않고 그냥 위 교복에 아래는 내복을 올리고 스타킹만 신은 채 코트를 입고 등교를 한 것이다. 

우선은 엄마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폴짝폴짝 뛰면서 난리가 났고 나더러 빨리 학교에 가져다주라고 했다. 나는 막무가내로 싫다고 버티고 엄마는 거의 혼절을 할 지경이고.

내가 버틴 것은 딱 하나의 이유에서다, 남자가 여고를 간다는 것은 화약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많은 친구의 놀림을 어떻게 당할 것이며 더욱이 누나가 치마를 안 입고 가서 치마를 전해주러 갔다고 하면 뭐라고 할까. 나는 죽기 살기로 버티었다. 

결국, 어머니는 내 고집을 꺾지 못하시고 누나의 교복 치마를 들고 학교로 가셨다. 방에 누워 있어도 마음은 편치 않고 누나가 걱정도 되고 어머니께 미안하기도 하고 생각이 참 복잡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잠결인지 꿈결인지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방에서 누나가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고 곁에 어머니는 기가 찬 듯 그런 누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는 이랬다. 엄마가 막 누가 교실에 도착 할 때쯤 누나 교실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함성이 터지더란다. 말해 뭐할까. 교실에서는 코트를 입지 못하니 교실에 들어가자 말자 코트를 벗은 누나의 모습을 보고 웃지 않으면 사람도 아니지. 

위는 하얀 풀 먹인 카라를 단 교복을 차려입고 빨간 내복을 무릎까지 걷어 올려 까만 스타킹을 신은 여고생.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날이 추워 내복을 입었으니 망정이지 따뜻한 날이었으면 그냥 속옷에 스타킹만 신었을 것인데 거기에 비하면 많이 얌전한 것이다 싶었다.

옷을 벗은 누나도 그 모습을 보는 같은 반 친구들도 놀라고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을 터. 어머니가 교복 치마를 가지고 교실에 도착했지만 일은 이미 터진 다음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누나 친구들이 엄마를 보고 나서는 그렇게 크게 웃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결국, 누나는 그 날 학교에 다시 가지 않아 결석하게 되었고 이후 누나는 학교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더 기가 막힌 건 그런 아픔을 겪고서도 누나의 아침잠은 사라지지 않았고 나와 엄마의 잔소리는 누나가 여고를 졸업하는 그날까지 이어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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