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나의 투쟁에 나오는 이야기다. “처음 말하면 모두 비웃는다. 두 번 말하면 미친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세 번 말하면 왜 저러지 하면서 들어준다. 네 번 말하면 공감하고 다섯번 말하면 따라온다”고 적고 있다.
세뇌가 얼마나 무서운가 하는 그 단면을 보여 주는 이야기다.
그 똑똑한 독일 국민들도 히틀러에게 세뇌당하여 결국 역사적 비극을 만들었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광고도 만들고 상담에 적용하기도 하고 정치에 이용하기도 한다.
가끔 티비에 이북의 모습을 비쳐줄때가 있다. 주민들이 수령에 열광하는 모습, 우상화된 동상, 정말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고 “저 동네는 제대로 된 사람이 그렇게도 없는가?”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아주 명쾌한 답변을 들었다.
“그냥 김일성교라는 이단사이비 교주로 생각해보세요”라는 것이다.
그들이 저렇게 된 이유를 찾는다면 무엇일까?
벙어리언론이요, 꼭두각시 언론이요, 독재자의 나팔수 언론이 가장 으뜸된 이유일 것이다.
2년 전 미국 대선 결과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미국 언론은 성향에 따라 현저히 양분된 것으로 보도했었지만 한국에선 선거 전날까지도 힐러리 승리예견 보도 일색이었다.
빅 데이터 전문 관련 교수가 유일하게 트럼프 승리를 예측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보도가 잘 안되었으니 미 대선결과를 우리 국민들은 ‘장사꾼같은 희한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가 너무나 크게 오판하게 한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국민들이 보고 듣고 한 트럼프 관련 정보는 우리 언론과 한국기자들이 읊퍼준 내용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국민들이 얻게되는 정보의 질과 수준은 신문과 TV, 스마트폰 포털뉴스에 의존한 것이기에 언론의 판단이 곧 국민의 판단에 제일 큰 영향력을 미친다 할 수 있다. 언론은 주장에 앞서 일단 사실을 명확히 전달해야 한다.
주관적 사실 말고 객관적 사실 말이다.
어느 목소리가 옳은지가 자신없으면 다양한 소리를 전달해주면 된다. 그래서 찬양일색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전제주의 국가의 특징이 곧 일치된 소리다. 언론은 다양한 소리를 다양한 모습으로 전달 하는 ‘사실 전달’이 가장 우선이다. 다양한 소리 전달이 실패하면 그 언론은 병든 언론이다.
다수의 다양한 목소리로 가장 적합한 여론을 형성해 나가도록 독자를 도와야 한다.
우리 대법원에는 14명의 대법관이 자리 잡고 있다. 법의 판단에 있어 다양한 생각을 집결하여 판결에 이르도록 하려는 제도다. 헌법 재판소 또한 아홉명의 재판관이 각자의 양심과 법률 지식과 상식으로 가장 적합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제도다. 그래서 이미 지나간 이야기지만 헌법 재판관들이 8대 0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데 대해 의구심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처럼 언론이 다양한 의견을 사실적으로 속히 전달하는 목적에서 출발했다면 두 번째는 집중하고 추적하는 진실 전달의 역할이다.
사실과 신속은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다. 시간이 가더라도 진실을 끝끝내 밝혀내는 진실 추구가 또한 목표다.
소식은 빠르게 잘 보도되어야 하지만 이는 진실이어야 함이다. 하여 불의와 부정과 거짓에 관해 끝까지 추적하고 조사하여 진실을 밝혀내는 일이 언론의 사명이다. 우리 신문사의 사시가 되어있는 진·선·미도 출발이 진실이다.
진실이 결여된것은 아무리 선해도 선하지 않은 것이며 아무리 아름다워도 아름답지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론은 또한 공정해야 한다. 미국의 그 유명한 앵커 오프라윈프리가 그렇게 정계진출을 시도했지만 미국 사회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앵커나 아나운서의 정계 진출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투표시 후보의 인지도에서 이미 많은 잇점을 안고 출발하기 때문에 공정하지 못하다는 게 그들의 기본 생각이다.
우리사회도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반듯한 운동장이 하루 속히 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2010년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G20 회의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의 폐막기자회견 이야기를 해보자. 부끄러운 한국 언론의 한 페이지이다.
세계를 이끈다해도 과언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바쁜 미국 대통령이 질문하라고 배려했는데 묻고싶은 말이 그렇게도 없었단 말인가. 정말로 기가 막힌 현실이다.
외국 기자들은 서로 물어볼 기회를 달라고 야단인데 개최국에 감사의 뜻으로 한국기자에게 우선권을 줬는데 이 무슨 개망신인가. 한국언론은 이날을 국치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어느 학교에서는 이 장면을 토론수업의 학습자료로 이용한다니 어린 학생들이 기자들에 대한 선입견이 생길까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