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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lent 四旬節)과 축제

(베드로 전서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동서독 분단 시 서독의 실질적 수도였던 ‘본(Bonn)’에 갔던 때는 2월 하순경 이었습니다. 작은 도시였지만 자유와 번영과 평화의 상징인 곳은 어떠한지 느껴보고 싶고 베토벤의 생가도 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유럽의 도시와 같이 중세풍의 나지막한 파스텔 톤 건물들과 다소 좁은 듯한 도로들은 정겨웠습니다. 

도시의 고풍스러움에 취해 나그네가 길을 걷고 있는데 앞에서 놀라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포크레인들과 대형 중장비 차들이 꽃 장식을 달고 광장 가득하게 이리저리 다니며 시민들에게 사탕을 던져주며 함성을 지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광장과 골목은 인파와 사탕으로 온통 보석이 깔린 것 같았고 사람들은 각색의 중세복장으로 분장한 채 축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건물의 창문마다 문을 활짝 열고 즐거운 함성을 지르며 노래하고 사탕을 밖으로 던지고 있는데 사람들은 주운 사탕을 주머니와 바구니에 아무나 한 웅큼씩 담아 가지고 갔습니다. 행복한 축제가 열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한껏 흥겨워진 나그네가 전철을 탔는데 이건 또 웬일인지? 맥주냄새가 전철 안 가득했습니다. 차를 타도, 길을 걸어도 맥주냄새가 출렁이고 맥주와 소시지를 열심히 먹고 있는 시민들은 즐겁고 왁자지껄 했습니다.

무슨 날이기에 이런 쌀쌀한 초봄에 축제를 하고 있느냐 물었더니 ‘사순절’기간을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기간이 지나면 참회하고 금식해야 하는 고난주간이 다가오기에 미리 먹고 마시고 즐긴 다음에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은 금식하고 경건히 절제하며 지낸다는 말이었습니다.

독일은 기독교 국가였기에 수백 년 풍습으로 지낸다고 했습니다.

사순절은 기독교의 중요 절기로 부활의 영광을 입기 전 예수그리스도의 행적을 기리며 참혹한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겸손과 경건을 갖추고 구도자의 모습으로 지냅니다. 부활절 이전 주일(6일)을 제외한 40일을 가리키며 올해에는 3월 6일‘재(Ash)의 수요일부터 4월21일 부활절 직전까지입니다. ‘재의 수요일’에 자신의 죄악을 애통해하며 회개한다는 뜻으로 이마에 재를 바르는데 이 절기는 성탄절이나 추수 감사절과는 다르게 근신과 절제, 은둔과 묵상, 금식과 구제를 통한 자기 성찰에 집중하는 기간입니다. 

16세기 종교 개혁자 칼뱅은 한때 이 절기 폐지도 주장 했는데  사순절의 금식과 고행은 금식과 고행을 통해 자기 공로를 과시하게 되어 기독교 핵심진리인 ‘이신득의’(인간의 공적이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음으로 의로워져 구원 받는다는 교리)를 위협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3장 1절 말씀처럼 이 기간 동안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깊이 생각하며 사도바울처럼 금식, 절제, 고난 핍박받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다면 칼뱅의 우려와는 달리, 자신의 부족한 영성을 크게 고양 시킬 수 있는 오히려 복된 계기가 될 것으로 교회는 여깁니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예수님의 죽음이 인간의 죄와 죽음을 대신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십자가를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감사하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삶만을 추구하던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인생이 되어 예수 고난의 흔적을 기리다 보니 사순절이 즐거운 풍습으로 변해 갔습니다, 그러나 이 사순절 40여일 만큼은 묵상과 기도, 금식과 절제와 선행으로 주님을 향한 귀한 사랑을 고백하고 실천해야겠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 절기를 지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복되고 아름다운 승리의 부활절을 소망하며 사순절을 지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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