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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의 미학

두레박 - 반윤희(시인, 수필가, 화가, 본지 객원기자)
좋아도 싫어도 붙잡지 못하는 것이 세월이다.
 아이들이 언제나 커서 좀 자유로워질까 했던 때가 있었다. 아들도 어느 사이 오십이 되어서 어제 엄마 돋보기 있느냐며 찾는다.

해가 갈수록 불안하고 무섭다. 언제 내게 좋은 날이 있었던가 싶도록 불안하다.
 퇴행성 척추협착증으로 육 개월 째 병원을 다니느라 모든 의욕상실이다.

괴로움을 호소하는 내게 의사는 칠십년 이상 써 먹었으니 당연하다며 몸을 아껴서 쓰고 지속적인 운동을 하면서 치료를 하면 나아 질 거라고 한다. 운동을 좀 심하게 하면 통증이 가중되고 운동을 하지 않으면 굳어서 걷기가 힘들고 정말 죽을 맛이다.
 어제가 정말 젊은 날이라고 했던 조언의 말이 실감이 난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생각이 깃들고, 희망을 걸어 보는 것이다. 목숨 붙어서 오래 살기만 하면 어쩌나 싶다. 자꾸만 주위에서 사라지는 친구며 지인이며 관계했던 인물들이 내 곁을 떠나는 일이 빈번해지니 더욱 불안하다. 

몇 해 전 어떤 시인이 부고장이 하도 날아와서 제발 내게 부고장 좀 보내지 말라는 시를 다 써 놓고 허탈해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작년에만 해도 새해 새벽에 혼자서 천마산을 올라서 해돋이를 바라보면서 떠오르는 해를 향해 기지개를 활짝 펴고 내 인생 마지막 꽃을 피워 보리라고 외치며 나이 생각은 못하고 작년에 정말 뛰고 달리고 많은 일을 해서 병이 난 것이다.

몸은 노쇠해 가고, 마음은 자꾸 뒤 돌아 보며 옛날을 그리워하는 이 나이가 서글프다. 옷장을 열어 보아도 신발장을 들여다보아도 이제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서 입고 신을 수가 없게 되었다. 버려야 할 것 투성인데 무슨 미련으로 버리지를 못하고 있다.

내가 즐겨 입고, 신고, 멋을 부리던 것들이다. 유심히 처다 본다. 내 인생의 흔적들이다 주마등처럼 흘러간 세월이 오버랩 된다.
야속하고도 야속하다. 진정 몸이 아프지 않을 때는 언제나 청춘일거라고 믿었다. 
 남의 속도 모르고 곱게 늙으셨느냐는 얘기를 들을 때면 더욱 심란하다. 

생명연장의 시대가 되다 보니 노년체험이란 프로그램도 생기고 빨리 내가 노인이라는 인식을 해서 몸을 나이에 맞게 단련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한다.

영화배우 재클린 비셋은 어떤 인터뷰에서 “나이 든 여자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 다스리기”이다.

자신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야 표정 역시 그윽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져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진다. 젊은 시절에는 그저 용모로 평가되지만 나이든 여자는 폭 넓은 경험, 이해심, 포용력 등 스스로를 어떻게 길들이고 주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아름다운 여자, 혹은 심술궂은 여자로 평가되지요." 라고 했다. 

늙어간다는 사실을 빨리 인식하고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노력이 있어야 노년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곱게 늙어 간다는 것은 아마도 어떠한 경우에도 긍정적인 생각과 남에게 자신의 따스한 손을 내밀어 잡아 줄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닐는지….

인생살이 쳐놓고 고단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며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수많은 삶의 얼굴 중에 밝고 따스한 면을 가려서 볼 줄 아는 지혜를 함께 공유할 수 있어야만 얼굴의 주름도 고단한 삶의 표식이 아니라 오랜 세월 공들여 만든 우아한 작품처럼 보일 테니까.
 아름다운 삶이란 아마도 많은 부분 긍정적으로 포용(包容)하면서 채우기 보다는 비우고 사는 것을 생활화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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