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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예찬

최중탁 미국 골프 티칭프로(USGTF)의 재미있는 골프이야기 52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1799 ~1837)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있다. 짖궂은 골프광이 골프버전으로 개작을 했다.
“벙커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욕하거나 노여워 하지 마라, 펄썩 또 펄썩 치다 보면 탈출 할 날은 오고 말리니, 마음은 술집에 살고  골프는 언제나 헤매는 것, 18홀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 다시 술안주가 되는 것….”

벙커(bunker 모래구덩이)는 골프코스내 특정지역에 잔디나 토양 대신 모래나 비슷한 골재를 채워서 만들어 놓은 해저드(hazard 함정)로 정의된다.
엄밀히 말하면 벙커는 샌드 해저드고 연못은 워터 해저드로 같은 과(課)다.

벙커는 과연 악마인가 천사인가.
라운드 중 가장 짜증스러운 곳이 벙커요 해저드다. 샷에 힘을 주고 치면 칠수록 공은 벙커나 해저드를 용케도 찾아 들어간다.
흔히 해저드에는 볼을 먹고 사는 귀신들이 있다고도 하며 개미귀신처럼 볼이 지나가면 끌고 들어가기 일쑤다.

화가나면 플레이어들은 핸디귀신 벙커 해저드 귀신들과 코스설계자는 다 한 통속 한 패라고 불평하기도 한다.
그나마 워터 해저드에 빠지면 미련없이 공 찾기를 단념하고 새 공을 꺼낸다.

그러나 모래구덩이는 공의 주인이 들어가서 공을 모시고 나와야 하는데 벙커귀신은 웬만해서 토해내려고 하지 않고 나오더라도 문지방에 걸터앉거나 아니면 홈런처럼 멀리 뱉어버리는 고약한 성질이 있다.

그래서 푸시킨의 시와 같이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지 않으면 벙커가 18홀 라운드 전체에 재를 뿌릴 수도 있다.
특히 왕초보 플레이어들에게는 벙커가 페어웨이에 아무 의미없고 불필요하게 여기저기 흩어 놓은 모래구덩이로만 보인다. 잔디가 모자라서 모래로 채워놓지 않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벙커는 골프장 입장에서도 끝임없이 일거리를 만들고 예산을 소모하는 돈구덩이요 설계나 위치선정이 잘못되면 애물단지가 되기도 한다. 
벙커도 잔디 못지않게 고도의 관리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벙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벙커 트라우마에 깊이 갇힌 자들의 편견일 뿐이다.

코스설계에서 아름다운 조경의 포인트는 워터 해저드와 벙커다. 맑은 하늘도 좋지만 군데군데 흰 구름이 있는 하늘이 더 조화롭고 아름다운 것과 같다.

벙커샷에 숙달되어 두려움이 없는 골퍼들에게 벙커는 코스공략상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로서 활용도가 아주 높다.
어떤 골퍼들은 골프장에 왜 가느냐고 물으면 ‘그곳에 벙커가 있음에 가노라’라며 벙커없는 골프장은 속이 없는 찐빵이요 드레싱 없는 샐러드라며 벙커를 예찬하기도 한다.

들어갈 때 보다 뺄 때가 더 짜릿하다는 야릇한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페어웨이 벙커와 그린사이드 벙커의 순(順)기능은, 실수에 대한 벌, 위험지역 추락 방호벽, 샷방향 이정표, 안전사고 예방 완충지, 분실구로 인한 경기진행 지연예방과 아름다운 조경에 의한 심리적 힐링효과 등이다.

스코틀란드 해안에는 농사나 목초지로도 부적합한 모래 퇴적지인 넖은 사구(沙丘 dunes)황무지 links land가 많다.
긴긴 여름 백야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 목동들의 놀이터로 원시골프의 발상지라 할수 있다. 배수가 잘 되는 사토질은 골프장 잔디의 생육에 적합하여 초창기 골프장들이 생겼다. 군데군데 모래구덩이를 그대로 둔것이 벙커의  기원이다.

지금도 그들은 해안지대 골프장을 links 또는 linkers라고 부른다.
이 곳의 벙커턱에는 야생 토끼들이 굴을 파고 새끼를 키우며 살고 있어서 아일랜드 링스코스에서 라운드 중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있었다.

유명한 영국의 브리티시 오픈은 반드시 전통 적인 링스코스에서만 개최된다.

10여 년 전 USPGA 챔피언십이 열렸던 미국 위스콘신주 위슬링 스트레이츠 GC, 피트 다이가 설계한 이 코스는 18홀에 벙커가 무려  967개나 된다. 페어웨이에는 푸른 잔디가 징검다리처럼 점점이 보일 뿐이다. 8번홀 (파4)에는 102개나 되고 5번홀(파5)에는 300야드 길이의 벙커도 있다.

국내는 경기도 용인 레이크힐스 용인 CC가 27홀에 160개로 벙커가 가장 많다. 루비코스 8번홀(파5)은 23개나 된다.
벙커없는 골프장은 없다. 벙커있는 연습장도 드물다.그래서인지 벙커 연습은 소홀히 한다.
드라이버 보다 쉬운 벙커샷을 연마하여 자신감이 생기면 벙커를 역이용하는 공략전술 까지 구상해 낼 수도 있다.
 벙커는 결코 악마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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