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년 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경제’다. 각종 지표 등 성적이 상당히 저조한 상황이다. 경기흐름지표가 장기간 부진을 면치 못하자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도 일본식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본지는 [韓경제 긴급진단] 기획을 통해 현 상황을 진단해 본다.
현재의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향후 경기 국면을 예고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가 8개월째 동반 하락하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긴 것은 물론 통계청이 경기 순환기를 짚어보기 시작한 1972년 3월 이후 최장기간이다.
외환위기 때보다도 나쁜 경기흐름지표
통계청에 따르면 2019년 1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9.1,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98.5로 전월 대비 각각 0.1포인트(P), 0.4P씩 떨어졌다. 2018년 5월에 각각 99.6, 100.1을 기록한 뒤 6월부터 2019년 1월까지 8개월째 두 지표 모두 떨어졌다.
지금 당장 경기상황과 앞으로가 모두 나쁜 상황이 길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앞서 동행·선행지수 순환변동치 동반 하락의 최장기록은 1997년 외환위기 때 6개월(1997년 9월~1998년 2월)이었다. 2002년 카드대란(2003년 1월~5월)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4월~8월) 때도 5개월 만에 상승 반전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경기선행지수(Composite Leading Indicators·CLI) 평가는 더 우울하다. 한국의 2018년 12월 OECD CLI는 전월보다 0.01P 떨어진 99.19를 기록, 20개월 연속 하락했다.
OECD CLI는 6~9개월 뒤 경기 흐름을 나타낸다. 기준점은 100. 수치가 100보다 크면 경기 상승으로, 100보다 작으면 경기 하강으로 판단한다.
한국의 OECD CLI는 2018년 5월(99.91) 100 아래로 떨어진 뒤 8개월째 기준점을 밑돌고 있다. 한국 경기의 단기 전망이 8개월째 하강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2018년 12월 한국의 OECD CLI인 99.19는 OECD 회원국 전체(99.20)보다도 낮았다.
이영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동행·선행지수 순환변동치, OECD CLI 등은 경기 흐름을 나타내며 사이클(Cycle) 적인 순환요인을 파악하기 위한 지표일 뿐”이라면서도 “이런 지표가 하락하는 현상이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면 경기가 침체하는 국면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생산·투자·수출 부진, 생산가능인구도 감소 중
생산·투자지표와 고용상황도 좋지 않다. 한국 경제를 책임지던 수출은 감소 국면에 접어들었고 생산가능인구마저 줄어드는 추세다.
2018년 전(全)산업생산지수는 전년보다 1.0% 증가했다. 증가 폭은 2016년 3.0%, 2017년은 2.3% 등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설비투자는 4.2%, 건설기성은 5.1%, 건설수주는 4.5% 감소했다. 올 1월 들어 생산·투자·소비지표 모두 상승하기는 했으나 개선세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김보경 통계청 산업동향과장은 지난달 28일 “2019년 1월 설비투자 등이 반등하기는 했으나 건설수주가 많이 감소한 상태라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생산·투자·소비 모두 개선된 모습이지만 이 추세가 유지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고용의 경우 2018년 취업자 수가 9만7000명 느는 데 그쳐 글로벌 금융위기 이듬해인 2009년 이후 가장 적게 증가했다. 실업률(3.8%)은 2001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았다. 올 2월 수출은 전년보다 11.1% 감소했다. 지난해 한국의 경상수지는 전년보다 개선됐고 21년째 흑자 행진을 이어갔지만 ‘작년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최근 경제 동향’을 매월 발표하며 지난 4개월(2018년 12월~2019년 1월)간 수출에 대해 ‘흐름이 탄탄하다’고 표현해왔던 기획재정부도 지난달부터 ‘조정을 받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는 상황이다.
한국의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2016년 3762만7000명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7000명, 2018년에는 4만6000명 감소할 전망이다. 2020년부터는 매해 20만명 이상으로 감소 폭이 커진다. 국제 연합(UN) 역시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2015년을 정점으로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韓 경제, 日식 장기불황 진입 단계일 가능성”
문제는 투자 부진과 인구 감소 등이 일본 경기가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게 만든 주요 원인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1990년대 중반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 고령화가 한국보다 빠르게 진행됐다.
2010년부터는 총인구도 감소세에 접어들었다. 인구 감소는 일본 경제성장률 둔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줄어든 인구는 자산가격 하락을 초래했고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려 내수가 부진해졌다.
내수 부진은 경상수지 흑자와 엔고(高) 현상을 유발, 디플레이션(Deflation·경기 침체와 맞물린 지속적인 물가 하락)을 초래했다. 물가가 내려가자 가계가 느끼는 부채 부담은 커졌다. 여유가 없어진 가계는 소비를 줄였고 이는 내수 악화와 기업 투자 축소로 이어졌다. 2000년대 일본에서는 소비자물가가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주요 선진국 중 유일했다.
거품이 꺼지기 시작한 1990년부터 2012년까지 일본의 경제성장률도 연평균 0.8% 수준에 머물렀다. 2013년 2.0%를 기록, 한 차례 2%대를 회복한 뒤 2018년까지 0~1%대를 횡보했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동행·선행지수 순환변동치와 전산업생산지수 등 각종 지표의 악화는 일시적이거나 추세적인 현상일 수 있다”면서도 “경제성장률에 중요한 요소인 인구가 20년가량의 시차를 두고 일본을 따라가고 있다. 향후 한국의 경제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안동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은 일본처럼 1990년대 거품이 꺼지며 자산 가격이 갑작스럽게 하락하는 일도 없었고 아직 소비지표는 양호한 편”이라면서도 “생산가능인구 감소 등 단기간에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부인하기는 어렵다. 장기불황으로 접어드는 단계로 보인다”고 짚었다.
이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