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년 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경제’다. 각종 지표 등 성적이 상당히 저조한 상황이다. 경기흐름지표가 장기간 부진을 면치 못하자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도 일본식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본지는 [韓경제 긴급진단] 기획을 통해 현 상황을 진단해 본다.
정부는 올해 들어 급락한 경기 타개를 위해 최근 ‘혁신창업 환경 조성’ ‘사회안전망 강화’ ‘수출활력제고대책’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면제’ 등 처방전을 잇따라 내놨다. 이중 혁신창업 환경 조성과 사회안전망 강화는 이름만 바뀌었을 뿐 이전 정부들도 시행해왔던 정책들이다. 산업계와 시장의 관심은 수출활력제고대책과 예타 면제에 쏠렸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가 내놓은 수출활력제고대책은 기대에 못 미쳤다. ‘이전에 내놨던 대책과 흡사하고 새로운 내용이 없다’는 지적이다. 오랜 기간 한국 경제의 성장 동력이었던 수출이 1~2월 하락세를 기록, 우려가 큰 상황이었던 터라 학계와 언론의 비판은 거셌다.
예타 면제에 대한 평가도 비슷하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으로 부동산 시장의 관심은 뜨거웠으나 경기 부양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 상황이다. ‘지역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에 경제성 떨어지는 사업을 추진했다가 예산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산업부가 지난 3월 4일 발표한 수출활력제고대책의 주요 내용은 ▲무역금융 지원 보강 ▲수출 마케팅 지원 확대 ▲신흥시장 진출 지원 강화 ▲수출기반 확충 ▲중·장기 수출 체질 개선 등이다.
235조원의 무역금융을 지원하고 수출 마케팅에는 3528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각종 대출·보증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거나 개선하고 수출 중소기업들의 해외 전시회 참석을 돕기로 했다. 바이오헬스, 2차 전지, 문화콘텐츠 등을 육성해 신수출성장동력을 만들고 수출기업을 맞춤 지원해 수출기반을 넓히겠다는 구상도 포함했다.
당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산업부는 기획재정부, 벤처중소기업부, 금융위원회 등 부처와 함께 한 달가량을 매달렸다. “1월 21일 범(凡)정부 차원의 ‘수출 총력지원체계’를 가동해 수출상황과 통상현안을 점검했다. 현장 애로를 해결하기 위해 성윤모 산업부 장관이 부산신항, 인천공항 등을 직접 방문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009년 12월 지식경제부(현 산업부)가 재정경제부(기재부), 국토해양부(국토교통부), 금융위 등과 함께 내놨던 ‘2010년 수출여건 및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시 지경부가 내놓은 대책은 ▲수출금융 확대 ▲해외 마케팅 인프라 강화 ▲선진·신흥시장 수출 차별화 ▲저비용 수출입 물류체계 구축 ▲한국 제품의 비가격 경쟁력 제고 등.금융 관련 내용은 ‘수출금융 지원을 250조원까지 늘리겠다(2010년 대책)’에서 ‘무역금융 지원을 235조원으로 확대하겠다(2019년)’로, 마케팅은 ‘한국 전시회를 세계 수준으로 육성하겠다’에서 ‘해외 전시회 참석을 지원하겠다’로 내용 일부만 바뀌었다.
신흥시장도 ‘중국 내수시장 개척, 인도시장 확보, 아세안(ASEAN) 자유무역협정(FTA) 활용도 제고’에서 ‘인도·베트남 등 신남방, 러시아·우즈베키스탄 등 신북방 진출 지원’으로, 수출기반(물류 등) 또한 ‘제3자 물류 이용 활성화’에서 ‘전문 무역상사 등을 통한 수출대행 지원 강화’로 국가와 이름만 달라졌다.
하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대책은 이전 정권에서 내놨던 수출 대책과 각종 이름과 숫자 정도만 달라졌을 뿐 새로운 게 없다”면서 “그나마 이전 정권의 대책들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던 터라 이번에도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기재부가 내놓은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면제’도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기재부는 1월29일 ‘2019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전국 23개 사업, 24조1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SOC 조성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알렸다. 남부내륙철도 건설(4조7000억원), 평택-오송 복복선화(3조1000억원) 등이 포함됐다.
예타는 ‘해당 사업에서 발생하는 편익’과 ‘그 사업에 투입해야 하는 비용’을 함께 따져보는 절차다. SOC를 조성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을 추진하는 셈이다. 기재부는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고 국가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항변했으나 시민단체 등은 ‘재정 여건은 고려하지 않은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기재부의 예타 면제 발표 후 참여연대와 공동 논평을 내고 “대형 신규사업의 재정투자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예타 제도는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위해 반드시 준수돼야 할 원칙”이라면서 “지역균형발전은 장기적인 전략을 세우고 지방산업의 전략적인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재정을 투자해야 가능하다”고 성토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논평을 통해 “무분별한 토건 사업으로 인한 예산 낭비가 우려된다”면서 “지방자치단체 나눠먹기식 예타 면제를 결정한 문재인 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꼬집었다. 이경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