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체력 기량 정신력의 종합운동이다. 그 중에서 정신력(mental)의 비중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경기에서 승부욕 즉 마음가짐은 체력과 기량발휘에 크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죽이고 사는 전쟁터에서도 전투의지 즉 정신전력은 승전을 위한 기본조건이다.
골프의 특징은 경쟁자와 함께 라운드를 하지만 실제 경기는 자신과의 싸움, 코스나 코스 설계자와의 대결이라 할수 있다.
바둑 장기에서 상대방의 돌(石)이나 말(馬)이 아닌 숨겨진 수(手)와의 싸움인 것과 같다.
동반자란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플레이를 할뿐 대중교통 합승자처럼 예의만 지켜주면 되고 서로 경쟁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렇더라도 경기 중 서로에게 주는 심리적 영향을 완전히 피할수는 없다. 경쟁자가 계속 버디를 잡아낼 때 초조함이 있고 경쟁자가 실수하여 점수를 까먹으면 은근히 기분은 좋지만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
상대방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면 자기게임이 악영향을 받게 되므로 상수들은 동반자의 존재에 대해 무관심 하려고 애쓴다.
오로지 그 코스에서 주어진 목표타수의 달성에만 매진하고 전력투구 할 뿐이다.
소위 ‘아멘코너’로 유명한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을 만들어 마스터 대회를 창설한 1920년대 전설의 골퍼 바비 존스(Bobby Jones 1902~1971)가 있다. 골프 사가들은 그를 20세기 최고의 골퍼 ‘구성’(球聖)으로 꼽는다.
당시 4대 메이저 대회 즉 미국과 영국의 오픈경기 및 아마선수권을 13회나 우승한 그는 아마추어 정신을 지키기 위해 프로전향도 하지 않았다. 지성파 골퍼로 존경받는 그는 하버드에서 영ㆍ불ㆍ독문학, 기계공학에 법률도 공부한 변호사로 학문적으로도 광범위하게 조예가 깊었다. 2차 대전 때는 육군소령으로 참전도 했다.
그의 골프 전성기는 학업에 열중하고 있던 시기와 일치해서 풍부한 학식에 교양미와 유머감각 겸손함까지 갖춘 신사골퍼로 온갖 찬사가 뒤따랐다.
특히 그는 경기에 임하면 철저하게 자신의 멘탈을 관리했다. 라이벌과 경기를 한다고 의식하면 수시로 마음가짐이 영향을 받아 패하기 쉽고, 골프코스 자체를 시합상대로 생각하면 이길 수 있다고 믿었다.
항상 변하지 않는 골프코스의 기준타수 파를 잡는 목표로 경기를 하며, 그는 골프코스를 의인화하여 ‘올드맨 파’라는 친근한 애칭을 붙였다.
그는 골프란 ‘어느 사람’이 아닌 ‘어느 것’을 상대로 플레이 하는 것이며 ‘그 어느 것’이 바로 PAR라고 했다.
즉 외부 경쟁자가 아닌 ‘올드맨 파’와 게임을 하는 철학과 지혜를 강조했다.
그는 1925년 US오픈 마지막 라운드에서 1타차 선두를 유지, 우승을 눈앞에 두고 러프에서 어드레스 하다가 볼이 움직였으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벌타를 신고해서 우승을 놓쳤다.
그의 정직성을 두고 매스컴의 칭송이 쏟아졌고 모든 골퍼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그의 친구는 “나는 그가 우승 하는 것보다 벌타를 스스로 부과한 것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격찬했다.
‘꿩잡는게 매요, 파 잡는게 아마추어요, 버디 잡는게 프로’ 라는 말이 있다. 프로들의 전략도 각 홀에서 기준타수 파를 기본으로 ‘지키고’ 버디는 기회가 왔을 때 시도를 한다. 프로는 보기를 죄악시하여 ‘범한다’고 표현하며 절대 피해야 할 타수다.
기준타수도 수 차례의 변천과정을 거쳐 왔다.
1902년 미국에서, 1912년에는 영국 R&A (영국 왕립 골프협회)가 보기(BOGEY)를 지금의 PAR와 같은 기준타수로 제정했었다. 그 후 1940년대 미국에서는 ‘파’가 ‘보기’ 보다 더 좋은 성적을 의미하는 추세로 변했다. 1950년 R&A는 ‘보기 혹은 파’로 2중 개념을 도입했다가, 1952년 R&A와 USGA가 처음 PAR 개념으로 통일규칙을 확정했다.
골프란 기준타수와의 대결, 변함없는 상수인 코스 ‘올드맨 파’와의 게임이다. 그 올드맨은 인내심이 강한 영적 존재이며 버디나 더블 보기는 절대 안 한다.
좋은 전략은 코스상의 기준타수 보다 자기가 목표하는 타수를 상대로 경기를 하는 것이다.보기 플레이어라면 ‘올드맨 보기’와 맞서 싸워 보라.
골프를 망친 핑계 ‘108’가지 중 동반자 탓이 많고 사실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오로지 자신과 코스를 상대로 경기를 하면 남탓병에서 해방되어 잘 칠 수 있다.
상수는 남탓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