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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활

톨스토이는 러시아 작가로서 기독교 문학의 최고봉을 이룬 인물입니다. 생전에 노벨 문학상을 거부한 바 있는 위대한 작가로써 대표작은 세계인 대부분 ‘부활’을 들고 있습니다.
작가 로망롤랑은 부활은 ‘문학의 성서’이며 톨스토이 작품의 마지막 불꽃 이라고 표현합니다.
제목이 예수님의 부활을 연상케 하고 그 내용이 ‘거듭 태어남(重生)’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는 30~40대엔 계몽적 지식인이었고 깊은 신앙은 없었으나 54세에 발표한 참회록부터 깊은 기독교인으로 전환됐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고령의 71세에 부활이 발표된 것도 신앙적 동기였고 발표되자 세계는 톨스토이의 위대함에 감동했습니다.

작품의 내용은 한 남자주인공(네플류도프)이 자신이 젊은 날 타락시켰던 여주인공(카츄사)에게 끼친 비도덕적 행위를 뉘우치고 속죄의 노력을 계속해가는 이야기입니다.

타락과 버려짐, 살인누명을 쓰고 시베리아 유형(流刑)을 떠나는 여주인공 카츄샤에게 속죄의 사랑과 희생으로 용서를 구하고 청혼하지만 거절당한 후 집과 영지 등 모든 것을 처분하고 카츄사를 따라 3등 열차에 몸을 싣고 시베리아로 갑니다. 춥고 황량한 시베리아 벽지의 어느 여관방에서 성경(신약, 마태복음 5~7장)을 읽다가 영혼을 부활시킬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변화되어 부활의 길을 걷습니다.

이후 공작의 기득권과 부를 사회로 환원하고 세상의 소금이 되기 위해  십자가를 메기로 결심합니다. 죄인 네플류도프는 부활한 것입니다.
“진정한 예술은 기독교 예술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톨스토이는 주장합니다. 톨스토이가 붙들었던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이란 정지, 폐지, 퇴출, 죽음으로 사라진 것이 다시 시작하거나 생명을 찾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에서 지키는 부활절은 바벨론 달력으로 ‘니산’월 16일, 예수님 당시 4월 9일이라고 합니다. ‘니산’은 움직이다, 출발하다의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부활하셨고 기독교는 예수님 부활하신 날인 주일 날 주일을 성수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부활의 헬라어(고대 그리스어)적 의미는 죽음에서 일어나다. 부활하다, 다시 살아 소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우주와 지구를 운행하시며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어 부활하셨으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도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하게 됩니다.
하나님만 아시는 재림의 때에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이 다 예수님 음성을 듣고 부활하여 믿고 선을 행한 성도는 영생 천국에 들어가고 불신앙과 악을 행한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꼭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과 영생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구원은 ‘전인구원’으로써 영혼만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6시간 못 박혀 고초 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무덤 속에서 3일 만에 육체로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제자들과 500여명의 목격자가 있습니다.
기독교인의 부활은 예수님처럼 부활하는 영혼과 육체의 전인구원이요 부활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5:44~51을 보면 성도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하는데 신령한 몸으로, 변화된 몸으로 부활합니다.
예수님께서 흙으로 돌아갈 인간의 몸을 예수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시켜 주시니 참으로 감사 영광 돌립니다. 이 새로운 몸은 늙거나 병들거나 지치지 않는 몸입니다.

톨스토이의 “부활”에 나오는 카츄사와 네플류도프가 4월의 라일락 꽃 향기 나는 동산에서 부활절 계란 찾기 축제를 즐기며 기쁘게 뛰어다녔듯이 우리도 위대한 전인구원, 전인부활의 소망을 갖고 영생천국인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힘차게 사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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