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이후 심리적·정서적 충격, 이른바 ‘트라우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최근 1년 사이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 3명 중 1명은 우울감을 겪고 5명 가운데 1명은 극단적인 선택까지 떠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충격은 비단 눈에 보이는 대형재난 외에도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등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에도 발생하는 만큼 트라우마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빨리 위기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통합 실태 진단 및 대응 방안 연구(Ⅳ)’에 따르면 2017년 전국 19세 이상 75세 이하 국민 3839명을 대상으로 최근 1년간 부정적 생활사건(트라우마) 경험 여부를 물었더니 203명이 ‘예’라고 답했다.
이번 보고서에선 세월호 참사나 강원도 산불 피해처럼 외부에 드러나는 대형 재난이 아닌 개인이 살면서 직접적으로 경험한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이나 폭행 피해 등 일상생활 속 트라우마로 범위를 좁혔다. 전문가들은 특정사건이 개인감정을 송두리째 압도하고 삶을 위협하는 수준일 때 ‘트라우마를 경험했다’고 본다.
일상에서 트라우마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기 위해 최근 1년 사이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의 우울 경험 여부를 물어본 결과 32.8%인 69명이 우울함을 겪었다고 답했다. ‘우울하지 않았다’는 응답률은 67.2%(134명)였다.
1년간 부정적 생활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우울함을 경험한 비율이 13.6%(3614명 중 478명)였다. 생활 속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서 우울함을 겪은 사람이 나올 확률이 높았던 셈이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하는 확률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았다.
1년간 부정적 생활사건 경험자 가운데 극단적인 선택을 고려한 비율은 18.7%(203명 중 39명)로 부정적 생활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해본 경험 5.5%(3614명 중 183명)보다 3배 이상 높게 조사됐다.
그렇다면 우린 살면서 평생 얼마나 많은 트라우마를 마주하는 걸까. 이번 조사에서 평생 발생하는 부정적 생활사건 빈도는 1.10회였다. 연구진이 제시한 11개 유형의 부정적 생활사건을 1개 이상 경험한 사람이 절반에 가까운 47.4%였다. 1가지를 꼽은 응답률이 20.57%, 2개는 11.14%, 3개는 6.52%, 4개 이상이라고 답한 비율도 9.17%나 됐다.
죽음, 유산, 실종 등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상실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가 30.29%로 가장 높았으며 재정적 문제가 20.33%, 학업·업무·취업에서의 실패나 어려움이 14.1% 등이 뒤를 이었다. 따돌림(3.07%)이나 어린시절 학대(1.97%) 등도 소수지만 경험한 사람들이 있었다.
연구진은 “트라우마 경험이 개인의 정신건강, 특히 우울과 극단적인 생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아동기에서 성인기, 전 생애에 걸쳐 누적된 트라우마 경험은 노인의 정신건강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외상이 발생한 초기에 개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자연재해나 세월호 사고와 같이 외상의 경험이 외부로 드러나 초기에 위기 개입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등 외상의 경험이 잘 드러나지 않아 초기 위기 개입이 어려운 상황도 많이 있으므로 조기 개입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4월 국립정신건강센터에 국가 트라우마센터를 설치한 데 이어 다음달 경남 창녕군 국립부곡병원 내에 영남권 트라우마센터를 신설키로 했다.
황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