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이 앓는 병중에 가장 난치에다 비극적인 게 치매다.
하루아침에 멀쩡했던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버리는 그 병은 지금 온통 세상을 휘젓고 다니며 무차별 폭격하듯 알츠하이머나 파킨슨씨병 같은 치매를 일으키고 있다.
그 병은 사람 뇌 속에서 신경전달 물질로 작용하는 도파민이란 호르몬이 스트레스나 어떤 자극에 의해 과다 분출됨으로써 부족해져 생기는 질환이다.
치매 癡?는 두 자가 다 어리석을 치와 어리석을 매로 바보를 의미하는데 그 바보스러움이 너무나 비극적이어서 차라리 암에 걸리는 게 치매를 앓는 것보다 낫다는 역설까지 낳았다.
상상해 보라 치매라는 게 그 얼마나 기막힌 병인가를.
세상에 멀쩡한 사람이 퇴근길에 갑자기 자기 집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거리를 밤새 헤매다 거지꼴로 길에 쓰러져 결국 신원불명의 행려병자로 분류되었다가 가족의 실종신고로 겨우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면,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아내더러 아줌마라 했다가 엄마라 부르고 등교하는 아들에게 깍듯이 절을 하며 ‘아버지 다녀 오십시요’ 하는 참담한 광경이 벌어진다는 것을.
그러면 무엇으로도 멈출 수 없는 비극이 그 가정을 덮쳐 똬리를 틀고 붙박인 것이다.
지난 세기까지만 해도 문둥병이라 한 나병은 그 발병원인의 불명함과 병으로 망가지는 모습의 참혹함 때문에 억울하게도 천형天刑, 즉 하늘이 내린 벌이라 불렀으며 그 누명을 씌운 채 강제로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시켜 짐승처럼 살게 했다.
그들에게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었으며 권리는 고사하고 표현할 기회조차 제한되었다.
한마디로 인간의 삶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병이 비전염성에다 유전이 아니며 불치병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왜곡된 인식이 바로 잡히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과 억울한 희생이 뒤따랐다.
한데, 아뿔싸, 문둥병과 아주 유사한 치매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여러 가지 가정적사회적 문제가 불거졌다.
우선 그 병의 이환율이 급증하는 게 문제다. 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인구 7백만 명의 10 퍼센트인 70만 명이 치매를 앓고 있다. 비전염성임에도 치매에 걸리는 노인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치매 발병을 촉진시키는 환경적 요인이 따로 있는지 모르나 증가일로라는 현상이 우려스럽다.
더욱 문제인 것은 치매는 악화를 막아 지연시킬 뿐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약점이다. 병자가 치료기능성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한다는 건 참기 어려운 절망이다.
치매가 결코 앓아서는 안 될 고약한 병인 것은 무엇보다도 가정을 망가뜨린다는 사실이다. 가족하고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다는 게 비극인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치매가 확실해진 후에 닥치는 난제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는 데 있다. 사지가 멀쩡한데 정신은 바보인 환자를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부터 난관에 봉착한다. 그건 시작에 불과해서 온갖 난제가 닥친다.
때문에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노년층의 경우가 그러하다. 항간에 떠도는 치매가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소리를 명심해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치매에 걸린 부모에게 최선의 효도는 구박대기로 전락하기 전에 요양소나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우리가 서둘러 고쳐야할 입방정이 있다. 가벼운 건망증이나 기억장애를 가지고 아무렇지 않게 치매인가 보다고 말하는 것이다.
섬뜩한 것은 상대가 누구든 작은 건망 실수를 대놓고 치매 아닌가하고 말하는 것이다.
두려워서든 농조로든 치매 아닌가 하고 치부하듯 말하는 것은 매우 불길한 어법이다.
그 소리 듣고 정말로 치매가 달려와 달려들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그러면 치매가 아닌가하고 말하는 게 치매의 저주가 된다는 의미다. 부디 말조심할 것이다. 그런 입방정을 몸속의 세포들이 듣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