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년 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는 ‘경제’다. 각종 지표 등 성적이 상당히 저조한 상황이다. 경기흐름지표가 장기간 부진을 면치 못하자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도 일본식 장기불황의 늪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본지는 [韓경제 긴급진단] 기획을 통해 현 상황을 진단해 본다.
“각종 경제지표가 오랜 기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식 장기불황의 전조증상입니까.”
거시경제 분야의 권위자 안동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는 “한국은 이미 장기불황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서슴없이 답했다. 경기순환 주기상의 일시적인 침체가 아닌 잠재성장률 자체가 훼손됐다는 설명이다. 역대 정부가 장기불황을 부르는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막지 못했다며 쓴소리도 거침없었다.
한국 경제의 대들보인 제조업 생산을 늘리기에 내수 시장은 작다. 높아져만 가는 보호무역주의 장벽에 수출을 키우기도 쉽지 않다. 환율을 높이자니 환율조작국 낙인이 두렵고 금리를 낮추자니 가계부채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무작정 나랏돈을 푸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운신의 폭이 좁다는 분석이다.
안 교수는 한국의 인센티브(Incentive·유인책)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해법을 내놨다. 생산성과 관련 없는 공공부문에 우수 인재들이 몰리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수출 대책이나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면제의 경기 부양 효과는 제한적이다. 한국 경제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할 일은 ‘왜곡된 인센티브 구조 바로잡기’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현재 경기 흐름을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미래를 예고하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 모두 장기간 하락하고 있다.
“경기순환 주기상 침체 단계로 접어드는 상황인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는 잠재성장률 자체가 구조적으로 훼손돼가는 중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주기상 일이라면 일정 기간이 지난 뒤 회복할 테니 크게 우려할 필요 없다. 문제는 잠재성장률 하락이다.”
한국 경제는 둘 중 어떤 상황인가.
“주기 흐름을 나타내는 곡선의 움직임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조밀해졌다. 향후 회복을 전제로 한 단순 침체기인지, 잠재성장률의 구조적인 훼손인지 명확히 구분해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서부터는 경제학자의 직관이 필요하다. 주기적인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그 어떤 정부도 한국의 구조적인 잠재성장률 훼손을 막지 못했다. 한 나라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잠재성장률은 낮아지기 마련이지만 한국은 그 속도가 빠르다는 점이 문제다.”
주기적인 측면이 있다면 얼마 후에 다시 회복기로 돌아설 수 있지 않나.
“산업생산지표 중 가장 비중이 큰 게 제조업이다. 제조업 생산이 늘어나려면 수요가 증가해야 한다. 그러나 제조업 생산을 확대하기에 내수 시장 규모는 작다. 수출 증가도 요원하다. 미-중 무역분쟁에 세계 경기가 둔화하고 있어서다. 한편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적인 조치는 제한적이다. 환율정책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우려도 있고 국제분쟁을 유발할 수도 있어 이용하기 어렵다. 통화정책도 마찬가지다. 가계부채 문제가 엮여 있어 운신의 폭이 좁다. 이용 가능한 것은 돈 풀어 경기 부양하는 재정정책 정도다. 주기적인 관점으로 경기를 회복시키기는 어렵다고 본다.”
무엇이 문제인가.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인구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는 필연적으로 장기불황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오랜 기간 저출산 현상이 나타났고 작년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신생아는 태어나지 않고 구성원은 늙어가는 저출산 고령화 국가에서는 전형적으로 위험회피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 젊은이들이 공무원을 선호하는 현 상황이 대표적이다. 구성원들이 위험을 받아들이지 않는 만큼 보상이 작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성공한 사업가가 나타나지 않고 혁신은 줄어든다.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 경제도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있다. 장기불황 국면에 이미 접어들었다고 본다.”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인구를 늘리거나 인구 증가의 효과가 나도록 1인당 생산성을 높이면 된다. 인구 문제부터 보자. 이민자를 받으면 출산율을 높이지 않아도 인구를 늘릴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 국민 정서상 못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1인당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려면 우선 규제를 대거 없애야 한다. 1인당 생산성을 높이려면 혁신이 필요하다. 혁신과 규제의 양립은 불가능에 가깝다. 왜곡된 인센티브 구조도 바로잡아야 한다. 젊은 우수 인재들이 생산성과 무관한 공무원에 몰리지 않도록 공공-민간부문 간 급여 등 보상을 조정해야 한다.”
인센티브 구조를 바로잡는다니 잘 와닿지 않는다. 풀어서 설명해달라.
“우수 인재를 어디로 어떻게 유인하느냐의 문제다. 똑똑한 학생들이 의대에 몰린다. 근데 영리병원을 못 열게 하니 사업가 기질을 가진 의사들이 바이오산업계로 진출한다. 한국 바이오산업이 세계 수위권에 오른 배경이다.
컴퓨터공학과를 예로 들어보자. 요즘 학생들은 ‘40~50대까지 프로그래머로 일 못 한다’고 기피하는데 그 나이까지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으면 그게 더 문제다. 벤처기업을 만들어 관리자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규제를 풀어 창업 문턱을 낮추고 벤처캐피털(VC)이 투자할 수 있게 엑시트(Exit·회수) 시장도 조성해야 한다. 바이오업체 기술특례 상장했다가 회계 감리로 초토화하는 등 정책 엇박자를 내서는 안 된다.”
수출활력제고, 혁신창업 환경 조성, 예타 면제 등 정부가 내놓은 정책들도 있다.
“수출활력제고대책이 나온 뒤 ‘새로운 게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더는 만들 게 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부터 수출에 올인 해왔는데 그동안 나오지 않은 대책이 있겠느냐. 예타 면제의 경우 경기 부양 효과는 제한적이다.
오히려 경제성이 떨어져 그동안 예타를 통과하지 못했던 사업들을 섣불리 추진했다가 운영비 등 지출이 계속 발생할 우려가 있다. 고용이나 건설투자 등 시행 초기 이외에는 효과가 마이너스 일 수 있다. 혁신창업 환경은 정부 돈 풀어서 만들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정부 돈 받아 투자하는 한국 VC의 제1 목표는 ‘감사 대비’다. 효율적인 투자에 기반한 엑시트 시장 조성이 불가능한 이유다. 혁신창업 환경 조성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은 돈 풀기가 아닌 규제 풀기다.”
안동현 교수 약력
▲1964년 서울 ▲1988년 고려대학교 경영학 학사 ▲1990년 고려대 경영학 석사 ▲1996년 미국 뉴욕대학교 경영학 박사 ▲1996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경영대학 조교수 ▲2001년 노스캐롤라이나대 경영대 종신 부교수 ▲2004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부교수 ▲2008년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퀀트전략본부장 ▲2009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2016년 자본시장연구원장 이경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