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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쟁첩

하림산책 - 박하림(수필가/전 (주) 휴비츠 고문)
우리나라 반상기에 쟁첩이라는 찬 그릇이 있다. 찬그릇이 너무나도 앙증맞게 생겨서 꼭 소꿉장난 반상에 올린 그릇 같다. 쟁첩은 많은 반찬을 보기 흉하게 한 접시에다 앙구는 것을 피해 찬을 품위 있게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것은 자기로 만들던 방자로 만들던 그 모양이 얌전하고 예뻐 상을 차려놓으면 아름답다. 한데 그 품위나 조화에 있어 자기보다는 방자 쟁첩이 더 고급스럽고 어울린다. 더구나 밥상에 올린 식기가 방자 놋그릇이면 더욱 그렇다. 

그러므로 밥주발은 방자 놋그릇인데 쟁첩이 사기그릇이면 어디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어울리지 않으며 꼭 어디서 데려온 첩의 자식처럼 어색하다. 
쟁첩은 가지런하게 차려 놓으면 꼭 음전한 자식들과 겸상한 부모처럼 화기애애하다. 

찬이 뒤따르는 우리네 밥상은 서양식 밥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메인 디쉬에 따로 따라 나오는 반찬이 없이 주식접시에 반찬 유에 해당하는 으깬 감자며 채소볶음 같은 것들은 한 접시에 앙구기 때문에 서양식탁은 쟁첩을 알지 못한다. 

서양식 상차림이 원래 멋없긴 하다. 스테이크의 경우 모양 있게 다듬지 않으며 사용하는 수저도 쇠스랑 꼴의 포크에 살벌한 나이프라서 품위나 격조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네 밥상의 수저는 어떠한가. 숟갈과 젓가락은 가지런하게 차려 놓으면 얌전하니 잘 어울리는 한 벌이다. 그 쓰임은 은근히 실용적이면서 우아하다. 숟가락은 밥과 국을 먹는데 쓰이고 젓가락은 반찬을 먹는데 쓰이는데 숟갈이 작은 쟁첩을 드나들면 볼썽사나운 게 낭만적인 법도다.

아 그런데 어찌된 진화인지 무뢰한 멋대로 변화인지 쟁첩이 사라졌다. 지금 가정이고 바깥 식당이고 찬그릇을  쟁첩으로 사용하는 경우란 거의 볼 수가 없고 사용해도 간장 고추장이나 새우젓, 젓갈류 그릇으로 두서너 개를 사용할 뿐이다. 순전히 편의를 도모하려는 탓이다. 

무엇보다 한심한 것은 쟁첩 대신에 찬이나 요리 그릇을 대문짝만한 접시나 그릇에 담아내는 음식점의 품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차림이다. 그건 순전히 상차림이 떡 벌어지게, 좋게 표현해 푸짐하게, 차렸다는 과장이요 허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런 허세는 낭비요 식욕을 질리게 떨어트리는 자가당착인데 말이다.

쟁첩에다 찬을 담아 차려낸 상을 받으면 왠지 양반다리를 하고 칙사 대접을 받는 서방님 모습이 떠오른다. 쟁첩은 단순한 찬그릇이 아닌 것이다.
쟁첩의 사용이 다소 번거로운 점이 있긴 하나 그 품위와 멋에 있어 세계 어느 식탁에도 없는 예술성을 띤 밥상문화이니 편의만 좇을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찬그릇을 쟁첩으로 사용할 것을 권장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쟁첩을 만드는 생산자, 특히 방자로 만드는 데나 장인이 드문 것 같다. 아마도 수요가 없기 때문일 건데 그런 현실은 따지고 보면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지켜 전승하는 장인정신이 고사한 때문일 것이다. 

앙증맞은 쟁첩들이 가지런히 앉은 밥상에서 수저가 그릇에 부딪히며 내는 소리를 들으며 흰쌀밥에 육개장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모른다. 

오래 전 일본을 여행할 때 옛 수도였던 교토의 전통음식점으로 점심 초대를 받아 전통음식을 맛본 적이 있었다. 
네모난 밥상은 우리 것과 유사했으나 상차림은 딴판이었다. 대여섯 가지의 소찬을 올린 상차림은 검소했고 찬 그릇은 작은데 담긴 찬은 담다 만 것처럼 적었다.

특이하게 찬그릇은 붉은 색조의 옻칠을 한 작은 나무접시였다. 그런 상차림이 신분이 높은 상류층의 식문화를 재현한 거라는 설명에 놀랐다. 거기에는 어색한 꾸밈이나 과장된 차림이란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곧 이어 우리네 쟁첩을 떠올리자 저 칠기 찬 접시가 말할 수 없이 초라해 보이고 술마저 접시 형태의 술잔에다 마시는 게 왠지 경망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네 방자 쟁첩의 앙증맞은 뚜껑을 벗길 때 손에 실리는 느낌을 그런 밥상에선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괜히 기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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