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LG, 한진, 두산그룹의 총수를 각각 구광모, 조원태, 박정원 회장을 새 동일인(총수)로 변경했다. 구광모·박정원 회장은 재벌 4세이고 조원태 회장은 3세다. 작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등에 이어 국내 재벌 3·4세 경영 체제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5일 ‘2019년 공시대상·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대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 이 세 그룹의 총수를 새롭게 지정했다고 밝혔다. 김성삼 공정위 기업집단국장은 “창업주 이후 4세대인 동일인이 등장하는 등 지배구조상 변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LG와 한진, 두산은 각각 구본무, 조양호, 박용곤 전 회장이 별세하면서 뒤를 이을 후계자가 필요했다. 특히 한진의 경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 전 회장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뜨면서 그룹 내 혼란을 빚은 탓이다.
공정위는 총수를 지정할 때 지분율과 경영활동에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여부 등을 토대로 판단한다. 공정위는 한진의 경우 조 회장이 지분 자체는 많지 않지만 임원 선임이나 신규 투자 결정 등 주요 경영활동에 가장 영향력이 크다고 판단해 직권으로 지정했다.
공정위는 현대자동차의 경우 정몽구 명예회장의 기존 총수 지위를 유지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정 명예회장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의사 소견서까지 받은 결과 정상적인 경영이 가능한 상태라고 결론내렸다. 또 정 명예회장이 동일인 관련자, 즉 정 총괄수석부회장을 통해 여전히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도 봤다.
효성, 금호아시아나, 코오롱 등 기존 총수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기업들도 이번에 별도로 총수 변경을 신청하지 않았다. 공정위 역시 이들의 실질 지배력에 변화가 크지 않다고 판단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이번 공정위의 발표로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총수에 오른 이들 젊은 경영인들은 기업 지휘에 앞서 ‘상속세’ 해결을 통한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하는가에 집중되고 있다.
구광모 회장은 지난해 별세한 구본무 회장의 지분을 물려받으려고 자회사를 팔아 9215억원의 상속세 1차분을 마련했고 ㈜LG 주식의 49.9%를 용산세무서 등에 담보로 내놓았다. 상대적으로 오랜기간 경영 승계를 위해 꾸준히 지분을 늘려왔고,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없었기 때문에 역대 최고 상속세에도 불구하고 납부엔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박정원 두산 회장도 ㈜두산의 지분 6.4%를 보유한 최대주주 상태로 이미 2016년 3월 그룹 회장직을 물려받아 지분 상속과 관련해선 여유롭다. 박 회장은 두산의 등기임원으로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함께 경영관리를 총괄하다 박용만 회장으로부터 그룹 회장을 승계해 오너4세 경영시대를 열게됐다.
다만 갑작스레 지난 4월 조양호 전 회장이 타계한 한진그룹은 아직 상속세 납부와 관련해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아들 조원태 회장이 고 조양호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지분 17.84%(경영권 프리미엄(최대주주 할증평가) 포함 약 4000억원)을 모두 물려 받으려면 세율 50%로 단순 계산해도 상속세는 2000억원에 달한다.
조 회장의 한진칼 지분은 2.34%에 불과한데, 경영권을 위협하는 행동주의 펀드 KCGI(강성부펀드)는 최근 한진칼 지분을 14.98%까지 늘리고 있다. 상속세 마련을 위해 주식을 매각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가족간 갈등설 등 3남매 간의 지분정리 및 계열분리 가능성 속에서 상속세 재원마련에 대한 의견 합치에도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관측도 제기된다.
한편 재계 순위의 경우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2006년 이후 계속된 ‘빅4’의 서열엔 올해도 변화가 없었다. 삼성전자는 339조5000억원에서 414조5000억원으로 한해 동안 자산을 무려 75조원 늘리며 굳건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각각 7위와 8위를 차지한 GS와 한화는 올해 순위가 바뀌었다.
10위권 기업의 순위도 일부 변경됐다. 지난해보다 자산이 늘어난 한진과 CJ는 순위가 한 계단씩 올라 13·14위를 기록했다. 두산은 2조원 가량의 자산감소 영향으로 전년도 13위에서 15위로 내려왔다.
또 카카오의 자산이 10조원을 넘어서며 정보기술(IT) 기업 가운데 첫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IT 산업의 위상을 보여준다는 진단이다.
신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