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예부터 유교의 근원인 삼강오륜(三綱五倫) 사상이 깊이 잠재되어 일상생활의 지표로 정신과 행동의 하나에 까지 깊숙이 제약을 받아왔다.
제약이라기 보다는 당연한 도리로 개개인이 스스로 챙기고 실천하는 생활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한 삼강오륜이 이제는 교과서에서나 가끔 오르내리는 용어가 되어 어쩌면 사회의 귀찮아진 존재가치가 되어 버렸는지 모른다.
얼마나 현대인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고 실천하느냐 보다는 지금에 와서까지 구태의연하게 이런 것까지 의식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현대에 몸담고 있는 필자도 회색되어진 삼강오륜을 들추기 보다는 삼강에 대한 느낌을 실용적으로 풀이해 보려고 한다.
삼강의 첫째는 군위신강(君爲臣綱)이다. 즉 신하는 임금님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라는 뜻인데 이는 충이요, 애국의 의미다. 나라는 신하인 국민들이 지키고 받들어야 할 당연한 의무가 있다.
둘째는 부위자강(父爲子綱)이다. 즉 자식은 아버지를 섬기는 것이 근본으로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은 천부의 도리로 당연한 것이다.
부모 없는 자식이 없고 부모님은 자식을 양육하여 사회인으로 만든다. 인간은 그 뿌리를 잊지 않는 것이 효가 되는 것이다.
셋째는 부위부강(夫爲婦綱)인데 이는 아내는 남편을 섬기는 것이 근본이란 뜻이다. 부인은 남편을 잘 섬기는 것이 가정의 평화요, 자녀 교육이며 화목의 도리가 된다는 뜻이다.
이상 삼강에 대해 대략 정리해봤는데 그 속에는 깊고 넓은 뜻이 포괄적으로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신하는 임금을, 자식은 부모를, 아내는 남편을 일방적으로 받들고 섬기며 복종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만큼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남편에게 도리를 다한다면 상대적으로 임금은 백성을, 부모는 자식을, 남편은 아내를 위해 더 잘하고 위하는 노력으로 좋은 임금, 좋은 부모, 좋은 남편이 된다는 상대성을 강하게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그것이 일방적으로 강요당하는 의무 외에 뭐가 있냐고 물을지 모른다.
그러나 냉정하게 현실을 살펴보면, 이 삼강의 의미도 완전하게 뒤바뀌어 버린 감이 없지 않아 서글픈 생각도 들지만 지나칠 만큼 변해버렸다면 적은 문제가 아니다.
지적하자면 군이신강은 우리 민주주의 사회는 임금과 신하가 둘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국가 기강이 무너지는 평등이 아니라 통치자는 국민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국민은 국가가 왜 필요한가를 깨닫고 정부를 믿고 의무를 다하며 정당한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통치자는 민주의 수탁자임을 명심하고 국민을 믿으며 봉사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음은 부위자강인데 현실은 부모가 자식들 눈치나 보고 너무 받들며 오늘의 부모는 자식들 때문에 서서히 목이 조여들고 있다. 자식들에게 숨소리 죽여가며 눈치보는 신세로 자식이 상전이 아닌가?
부모들은 오직 자식만을 사랑하고 믿고 의지하면서 모든 걸 희생해온 훌륭하다기 보다 불행한 분들이기도 하다.
자식들 덕으로 호강하자고 하진 않는다. 오직 자식들을 낳았다는 것 때문에 도리는 다하는 것 뿐이다. 그러한 부모들이 수난의 시대가 온 것이다.
끝으로 부위부강인데, 남편은 무조건 아내의 섬김만 받는 것이 아니라 요즘은 아내에게 매맞고 쫓겨나고, 심지어 위자료 주고 이혼당하는 것이 놀라운 것은 아니다.
여성의 권위가 상승되고 성 폭력의 범위가 이슈가 되는 등 남자들도 이제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할 때이지만 이러다 남자들이 위축되고 어쩌면 다시 모계사회로 전환되는 기우 같은 생각으로 스트레스 받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암탉이 울어야 알을 낳지 집안이 망한다는 옛 사고는 버려야 한다.
어느 사회나 전통과 문화가 있다. 그런 전통이 하루 아침에 무너질 수도 없고 무너져서도 않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너무 쉽게 사회 기강이 흔들리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인간은 법 이전에 상식과 도덕이 있고, 받을 건 받아야 하지만 무분별한 관념이나 편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은 버리고 정당하고 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민주사회고 정의사회가 된다. 가정의 달을 맞아 다시금 오륜의 의미를 생가하게 하면서 선현들의 지혜에 고개 숙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