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은 무엇보다 조기 발견과 지속 치료가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적 편견이나 가종 인프라 부족으로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중증정신질환자가 33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례관리의 양과 질을 높이기 위해선 인력 충원과 시설 확충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보건 예산의 1.5%에 불과한 정신건강 예산과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인식 등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발병 후 치료받기까지 56주 재입원율 37.8%
1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중증정신질환자는 50만명 내외로 추산된다.
이 중 정신의료기관과 정신요양시설에 7만7161명이 입원치료와 정신요양서비스를, 지역사회 내 정신건강복지센터와 정신재활시설 등에 9만2291명이 등록했다. 이를 뺀 33만명 정도는 사각지대란 얘기다.
정신건강복지법에선 정신질환자를 ‘망상, 환각, 사고나 기분의 장애 등으로 인하여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중대한 제약이 있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이 가운데 중증정신질환은 조현병과 조울증 등 정신질환으로 유병기간이 일정기간 이상이고 일상생활 장애 등 전반적 기능평가가 저조한 사람으로 전체 인구의 1%로 추정된다.
조현병과 조울증은 주로 10대 후반에서 성년기 초반에 발병해 학업, 취업, 결혼 등에 영향을 미치고 심각한 장애를 유발하는 만큼 발병 초기 집중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발병 후 치료받기까지의 기간(DUP, Duration of Untreated Psychosis)이 약 1년2개월(56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추천하는 3개월(12주)보다 4.6배 이상 길다.
게다가 조현병 환자 가운데 약 52%는 발병 후 6개월간, 48%는 1년간 외래치료를 정기적으로 받지 않는다. 발병 후 5년간은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로 재발이 가장 잦고 뇌의 변화, 기능 저하 등이 나타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셈이다.
퇴원 이후 외래치료를 중단하면 악화와 재입원으로 이어지는데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정신질환자의 퇴원 후 1개월 내 외래방문율은 WHO 가입국 중간값(73%)에 못 미치는 62.0%다. 재입원율이 37.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1~13%를 3배가량 웃도는 이유다.
게다가 퇴원 후 한 달(30일)까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비율이 0.24%로 비정신질환자보다 10배 높을 정도로 자해 위험이 클뿐만 아니라 타해 위험 환자에 대한 적시치료가 이뤄지지 않으면 사고가 증가할 우려도 있다.
정신건강 복지 인프라 ‘열악’ 사회경제적 비용 11.3조
문제는 퇴원 이후 지역사회 내에서 정신질환자들이 적어도 결정적 시기인 5년간 지속치료와 재활 등 정신건강 복지서비스를 받기엔 관련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를 도울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 부족 문제는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 등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해서 제기된다. 지난해 기준 정신건강복지센터 종사자는 2435명인데 이 가운데 정신건강전문요원 1265명이 등록환자 7만6348명을 관리하고 있다. 요원 1명이 60명을 관리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종사자의 74.5%가 비정규직인 탓에 근속연수가 평균 3.1년(정규직·무기계약직 3.6년, 계약직·기간제 2.9년)에 불과한 상황이다.
사회적응 훈련을 위한 정신재활시설은 348개로 양적으로 부족한 데다 절반이 넘는 179개소(51.3%)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228개 기초 지방자치단체 중 45.6%인 104곳은 시설조차 없다.
응급상황에서 24시간 정신과 진료가 가능한 응급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의 19%에 불과하다. 24시간 정신응급 상황 시 경찰·구급대원과 현장에 출동할 수 있는 응급개입팀도 현재 5개 시·도에서만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탈원화를 위한 낮병원(주간만 환자를 수용진료하고 야간엔 귀가시켜 사회복귀로 가는 중간시설)은 경제적 유인이 낮아 설치율이 5.9%에 그쳤다.
2017년 5월30일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으로 정신보건정책 방향이 입원 중심에서 조기 발견·치료와 사회복귀 촉진으로 변화하면서 정신의료기관 재원환자가 줄어드는 추세(2016년말 6만9162명→지난해말 6만6027명)지만 이를 뒷받침할 시설이나 인력 등이 따라가지 못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신질환 총 진료비는 2014년 3조8000억원에서 2015년 4조1000억원, 2016년 4조5000억원, 2017년 4조8000억원 등으로 늘어났고 사회경제적비용은 2012년 9조3000억원에서 2015년 11조3000억원까지 증가했다.
예산 비중 1.5%… “정신질환은 같이 살아갈 수 있는 질병”
인력과 시설은 물론 내년 4월 시행되는 외래치료지원제 등 조기진단과 지속치료를 끌어낼 방법은 예산 문제로 이어진다.
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전체 보건 예산 11조1499억원 중 정신건강 관련 예산은 1713억원으로 1.5%에 불과하다. WHO가 권고하는 5%에 비하면 부족한 수치다.
정부는 이날 ‘중증정신질환자 보호·재활 지원을 위한 우선 조치방안’을 발표하면서 애초 2022년까지 충원하기로 했던 정신건강복지센터 인력 785명을 늦어도 2021년까지 1년 이상 앞당기기로 했지만 33만명에 달하는 사각지대 정신질환자가 사례관리 울타리 안으로 들어온다면 추가 증원이 불가피하다.
응급개입팀도 일당 내년 중으로 16개 광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설치하기로 했지만 인구와 면적 등을 고려하면 서울과 경기, 강원 등 일부 지역은 복수의 응급개입팀이 필요한 상황이다.
지역별·시설종류별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온 정신재활시설 확충 문제는 중장기 과제로 남겨뒀다.
권준욱 복지부 건강정책국장도 “광주 통합정신건강증진사업의 3년에 걸친 전국 확대, 응급개입팀 및 센터 인력 확충, 정신재활시설에 대한 중앙정부 개입, 사회복지 등이 상당히 미약한데 궁극적으론 최소한 보건 예산의 5%가 합당하다고 생각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도 관건이다. 지난해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은 정상적인 삶을 사는 데 제한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사회적인 배제를 받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은 조기발견 및 초기치료를 어렵게 하고 증상 악화와 만성화로 이어진다.
정신재활시설 등 정신건강 복지 서비스 제공 인프라를 확충할 예산을 확보하더라도 지역주민의 반대 등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중증정신질환은 그동안 대책이 미흡해 우발적인 큰 사고가 발생하고 있을 뿐이지 조기에 발견해 적절히 개입하고 지속적으로 치료하면 사회적 문제 없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같이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증상이다. 국민들이 너무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같이 어울리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개인적으로 바란다”며 사회적 인식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황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