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복판 대로를 사람들이 거센 바람에 등 떠밀리듯 한 방향으로 몰려갔다.
어떤 사람은 뭔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외치고 어떤 사람은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어떤 사람은 주위사람들을 독려해 가며 달렸다. 광장은 이미 인파와 함성과 뭔가 보람차고 정의로운 행진에 가담했다는 자부심으로 상기된 열기로 가득 찼다.
광우병 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저지하러 모이자는 여론이 사발통문으로 전달되자 흥분한 시민들이 항의시위에 가담하러 달려온 것이다.
더러운 정치적 암계를 숨긴 선동자들은 미제국주의자들이 병든 쇠고기를 수출했다면서 미국산 쇠고기를 몰아내자고 외쳤다.
광장의 열기가 고조되면서 선동적인 반정부 구호를 먹고 군중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정을 격앙시켰다. 이른바 ‘광장의 비이성적 분노와 정의감’이 군중을 사로잡았다.
그 결집은 곧 정치집회처럼 둔갑, 폭력적인 구호와 박수가 군중을 행진에 나서게 부추겼다. 정부고 대통령이고 미국이고 싸다듬이로 말 매를 맞았다. 특히 미국은 돈만 아는 부도덕한 나라로 못 박았다.
그러나 광우병이라는 악랄한 허위소문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판명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토록 기세등등하던 군중은 사라지고 어느 누구도 용기 있게 사죄하고 나서지 않았다. 비겁한 선동 꾼들은 회심의 미소를 띨 뿐 비루하게 침묵했다.
헛소문에 놀아나 국제적인 망신을 자초한 ‘어리석은 군중’과 그 광장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왜자간희矮者看戱, 자신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이 그렇다고 하니까 덩달아 그렇다고 하고 그 놀음에 덥석 가담해 따르는 모양을 이르는 말이다.
요새 흔히들 사용하는 ‘밴드왜건 효과Bandwagon Effect’라는 것이다. 목적도 없이 그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이고 소신도 없이 부화뇌동附和雷同 하는 것이다.
신념이나 소신도 없이 한통속이 되는 경향은 현대사회의 경박한 병폐로 이념이든 이해상관이든 바람이 들어서든 일단 선동을 당하면 덥석 밴드왜건을 올라타고 군중에 묻혀 마치 정의의 사도나 애국자, 혁명가라도 된 듯이 열렬한 시위 꾼이 된다.
실은 그 가담한 집회나 시위의 타당성이나 정당성에 무지하거나 동의하지 않으면서 휩쓸리는 것이다. 이런 군중을 ‘우중 愚衆’이라 한다.
홍수 지는 정보의 강에 자주 뜨는 유행성 밴드왜건은 화려하고 근사해 보이는 게 많기도 하다.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즐겨 탔던 밴드왜건, 이른바 붐이라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가히 그 천국임을 알 수 있다.
일제 전기밥솥, 뉴질랜드 산 오리털 이불, 전국 아줌마 가수 화 열풍, 갑자기 폭발적인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막걸리, 갓난쟁이 유모차까지 등장시킬 만큼 한마당놀이처럼 대중화된 시위, 텔레비전에 뜨기가 무섭게 우르르 몰려가 탐미가 아닌 난장판을 만드는 맛집 순례, 전국에 열풍처럼 분 웰빙 바람 등 이렇다 할 주견이나 가치관이 없이 선동적인 충동이나 바람에 덩달아 섞여 덥석 밴드왜건을 올라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정의롭거나 공익적이지 못하고 가치가 없는 왜자간희 행태야 말로 나라를 병들게 만들고 망칠 악폐다.
저 유명한 프랑스대혁명 때 이른바 ‘미덕의 공화국’ 건설을 찬동한 시민들은 혁명 열기에 취해 로베스 피에르의 자코뱅 당을 지지해 혁명대열에 합세했다. 그러나 곧 실망했다. 그들이 지지한 당이 급진당에다 피에르는 알려진 바와 딴판으로 공포정치의 주동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난무하는 정치적 왜자간희에 속았던 것이다.
오래 전에 왜자간희를 당해 기업이 망한 기막힌 사례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라면개발 선구자는 S식품이었다. 처음 시판할 때 그 맛이나 품질이 라면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일제 라멘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로 인기리에 팔렸다. 우리 라면시장이 활성화 되면서 그 국산 라면은 판매가 급성장했다.
한데 어느 날 언론에 S라면이 인체에 유해한 기름을 사용해 면을 튀긴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문제의 기름이 공업용 수지라는 보도에 소비자들은 아연실색, 분개해서 S라면을 외면했다.
메이커가 아무리 허위보도임을 해명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상당수 오피니언 리더들이 과학적 검증도 하지 않은 채 풍문이 굴러다니며 붙은 추측과 과장, 부정확한 지식으로 정립된 부정적 이론과 근거자료를 가지고 패거리 진 집단에 가세해 돌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일테면 오도된 여론에 의해 불량식품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다수는 소수보다 더 정의롭다는 ‘다수의 궤변 the fallacy of majority’이라는 분위기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판에다 쐐기를 박은 게 검찰의 기소였다. 그로써 S 라면은 부정식품으로 낙인이 찍혀 결국 그 메이커가 망하는 빌미가 되었다.
그리고 그 몇 년 후에 허위보도였음이 밝혀지고 공적으로 S 라면이 사용하는 기름이 공업용이 아닌 유해하지 않은 것을 인정하는 발표가 있었고 검찰도 기소가 잘못되었음을 시인, S사는 오명을 벗었다.
그러나 왜자간희에 놀아난 언론과 군중이 S사에 입힌 불명예나 손해를 보상 받을 길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