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을 위한 할아버지 서당(한자 성어로 보는 24절기) 만공(滿空) 배재수
하지(夏至 )절기 - ‘우레소리 북을 울려대듯 요란하고, 빗줄기 독을 엎을듯 퍼부어댄다’
위의 시구절은 고려말기 문신(文臣) 목은(牧隱) 이 색(李穡)이 지은 漢詩 ‘驟雨’(취우 : 소나기) 4행 중 첫 두 줄로, 하지(夏至) 무렵에 잦아지는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낙비를두고 시로 읊은 작품이다.
폭우피해로 하늘을 원망도 하겠지만 선비들에게서는 이런 자연재해까지 시상(詩想)으로 연결시키는 여유로움을 엿볼 수 있다.
하지는 24절기 중 열 번째 해당되는 절기로 음력 5월 양력으로는 6월 21일 무렵 (금년은 22일)이다.
1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떠서 황도(黃道)상 가장 북쪽에 위치하는데 이 위치를 하지점(夏至點)이라고 하며 연중 낮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다.
북극 지방에서는 종일 해가 지지 않으며 남극에서는 수평선 위에 해가 나타나지 않는다.
동지(冬至)에 가장 길었던 밤시간은 조금씩 짧아지기 시작하여 이날 가장 짧아지는 반면 낮시간은 2시간 반 이상 길어져서 14시간 반 정도나 된다.
북반구의 지표면이 태양으로부터 가장 많은 일사량을 가장 오랫동안 받아서 그 열이 쌓이면서 하지부터는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하고 기층이 불안해지며 천둥 번개 폭우가 잦고 장마가 시작된다.
하지까지 비가 안 올 경우 가뭄피해도 대비하고 비가 너무 많이 오는 장마도 대비해야 하는 절기다.
특히 옛날에는 가뭄이 들면 곧장 농사흉년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민간은 물론 조정에서도 비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祈雨祭)가 성행했었다.
기우제의 유형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장작을 쌓아 놓고 불을 붙이거나 동물과 사람을 신에게 바치는 형태, 비를 다스리는 신에게 의례와 춤 노래를 바치며 비를 내려 줄 것을 기원하는 의식 등이다.
하지는 한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로 청개구리가 울고 지렁이가 땅에서 나오는 시기다. 하지의 별미로는 이때 쯤 첫 수확이 시작되는 감자와 옥수수가 대표적이다.
특히 토양이 척박한 강원도 산간벽지에서는 보릿고개를 넘기고 나서 주식량이 되는 감자와 옥수수는 매우 중요한 농작물이다.
하지 무렵에는 꼭 밥에 감자를 넣어 먹어야 감자가 잘 열린다고 해서 ‘하짓날은 감자 캐먹는 날’이라고도 한다.
또 하지가 지나면 감자싹이 죽기 때문에 하짓날은 ‘감자 환갑’이라고도 하는데
이날은 ‘감자 천신(薦新 : 첫 수확물을 조상께 감사의 뜻으로 드리는 의식)한다’고 하여 햇감자로 전을 부쳐 먹었다.
감자와 옥수수는 하지 절기와 결코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고 밀접한 제철 식재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