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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過手)가 자초하는 것

하림산책 - 박하림(수필가 / 전 (주) 휴비츠 고문)
바둑에서 전세가 유리함만 믿고 지나치게 욕심을 내어 수를 쓰는 것을 과수라고 하는데 그런 과욕이 자초하는 것이 무리수인 악수惡手다. 
욕심은 묘수도 아닌 수를 묘수로 착각하여 놓아서는 안 되는 곳에다 돌을 놓아 결국 패착을 부르게 만든다. 한 점 바둑을 과욕에 떠밀려 무리수로 놓은 게 판세를 악화시키는 경우는 얼마든지 일어난다. 인생사에도 과욕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오히려 실패나 손해를 자초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해서 지나침은 과유불급, 미치지 못함과 같다고 한다. 

가령 점심상을 20첩 30첩 대탁으로 차릴 경우 네 사람이 먹더라도 그 반도 먹기 벅찰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찬 가짓수가 하도 많아 천천히 음미하며 먹지 못해 눈 호사는 할지 모르나 진정한 탐미는 불가능하다. 음식 본연의 미덕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등산객이 자초하는 사고를 보면 거의가 부주의와 교만과 무지에서 비롯되는 과욕이 원인이다.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고 일몰을 감안한 노정을 잡지 않은 채 과욕을 부려 정상에 오른 사람은 하산 때 체력이 고갈돼 사고를 부를 가능성이 높고 일몰 전에 하산을 끝낼 수 없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주식시장에서 단타매매나 일삼는 개미가 조심조심 투자를 해도 퍽 하면 스컬핑을 당하고 깡통을 차기 일쑤인데 과욕에 눈이 멀어 전문적인 분석도 없이 덜컥 과수로 상투를 잡으면 폐장도 되기 전에 반 토막도 나고 깡통도 차게 된다. 

지금은 수능시험을 통해 미리 평가를 해 대학지원을 함으로 제 실력에 맞지 않는 대학에 응시하는 경우가 없겠지만 옛날에는 떨어질 걸 알면서도 지원했다. 작정한 과수 지원을 하는 것이다. 

기왕 떨어지려면 일류대학에 응시했다가 불합격되었노라고 하는 게 체면이 서는 낙방이라 여긴 때문이었다. 의도된 과수였다.
 과수를 되풀이하는 구호가 있는데 화투판에서 한 방에 독자지 승부를 걸며 외치는 ‘못 먹어도 고!’다. 질 걸 내심 두려워하면서도 투기하듯 승부를 거는 것은 요행수를 노리는 과수다. 

그놈의 과욕이란 게 중독성이 강해서 노상 패착으로 끝나고 후회를 곱씹고도 곧 잊어버리고는 또 욕망의 마차에 올라타는 것이다. 
주식시장의 단타매매자(Daily Traders)인 이른바 개미들의 연평균 실적을 분석해 보면 저런 과욕에 중독돼 손실을 본 개미투자자가 무려 98퍼센트에 달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종일 상투를 잡혀 피를 봐 돌아올 때는 다시는 과수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가도 이튿날 매장으로 들어서면 사람이 확 변하듯 또 과수 투자를 하는 것이다.

금전사기를 당해 패가망신하는 피해자들 자탄하는 소리를 들어보면 공통된 착각이 있는데 비상식적인 고율금리나 배당을 보장한다는 황당한 미끼를 물고 있는 것이다. 그 큰돈을 땅을 파서 캐는 게 아님은 상식 수준의 이친데 어찌 그토록 깜빡 휘둘려 지갑을 열었는지 불가사의한 것이다. 아뿔싸, 그놈의 탐욕이 올라탄 과수가 눈을 가린 것이다. 

‘한 탕에 땡 잡자!’ 사탕발림에 홀라당 넘어가 그 피와 살 같은 돈을 사기 꾼 입에 집어넣은 것이다.
 문제는 과수를 좇는 의식의 만연현상이다. 인생노정 어디에고 공짜나 요행수 일확천금 노다지가 없는데 말이다. 그런 과욕은 인간이 살아서 하느님을 보겠다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 과수를 부리는 건 현대사회를 병들게 만드는 병폐의 한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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