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재도 귀재鬼才도 아닌 범재凡才가 인재가 될 수 있는가.
세상사는 수재보다는 인재가, 인재보다는 적재適材가 더 요긴하게 쓰이고 더 필요하다.
효율적인 인사는 수재나 귀재를 세우는 게 아니라 적재적소에 앉히는 인사다. 범재가 적재적소에 앉으면 인재처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도자기에 사람으로 치면 범재에 속하는 잡기가 있다. 이른바 막사발이다. 잡기에는 밥공기, 김치그릇, 막걸리잔 같은 생활용기가 있는데 그것들은 뒷산에서 캐온 흙으로 빚은 뒤 헐렁한 물레로 틀을 잡아 둘레가 매끈하지 않고 비뚤 비뚤한 데다 굽도 거칠다. 잡기의 특징은 필요에 따라 그 용도가 바뀌는 뛰어난 실용성이다.
말하자면 용기의 두루치기인 셈이다. 예컨대 막사발의 경우 밥상에는 밥을 담은 밥사발로, 손님이청하면 우물을 떠 담은 물그릇으로, 술상에는 술잔 대신으로 막걸리 잔으로, 푸쟁할 때는 냉수 그릇으로 두루 쓰인다.
그런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잡기가 고려청자에 버금가는 명품 보물이 된다는 사실은 불가사의한 변신이다.
일본인들은 막사발을 ‘고려다완 高麗茶碗’이라고 부르며 명기로 취급한다.
고려청자 못지않게 세계적인 도자기로 대접 받는 일본국보로 ‘이도다완’이 있다. 신물神物로 여기는 저 찻잔은 진주지방에서 만든 조선막사발로 조선차사발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에서는 천하제일의 차 사발을 의미하는 ‘쓰쓰이쓰쓰이이도’라고 한다. 조선에서 평범한 막사발로 빚어낸 잡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명기 중의 명기가 되어 국보로 대접 받고 있는 것이다.
범재가 뛰어난 준재俊才가 되는 이치와 같은 불가사의한 변신인 것이다. 무엇이 막사발을 국보급 명기로 격상시켰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의문이다. 일본의 차도나 다완 문화는 저 투박하기까지 한 막사발의 소박미를 극찬하고 있다. 우리가 그 이름조차 막되게 만들어 막 쓰게 만들었다고 막사발이라 붙인 것과 대조적으로 신물로 취급하는 안목에는 천하제일의 명기인 것이다.
잡기가 명기가 되는 것은 어디서 무엇으로 누가 빚었느냐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빚은 손을 통해 예술혼이 어떻게 녹아들어가 빛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건 형산에 깊이 매장돼 있는 박옥을 캐내어 어떻게 다듬어 내느냐에 그 보물의 가치가 좌우되는 것과 같다.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막사발 같은 사람들이 태반이다.
저들은 그저 막사발처럼 평범하게 태어나 평범하게 사는 것 같이 보인다. 사실이다. 한데 그들이 묵묵히 감당하고 있는 소임, 그건 타고난 하느님이 주신 소명(vocation), 으로 바로 삶의 한 부분을 책임지는 임무로 그 부분이 모이고 조화되어 삶을 완성시킨다. 청소부, 설비 공, 도배공, 채탄광부, 택시운전수, 간호 원 등 우리생활 곳곳에서 요긴한 역할을 한다.
만일 그들이 없다면 사회공동체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잡기인데도 명기처럼 쓰이는 잡기가 훨씬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