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
취업자 수 20만명 증가… 5만명 상향 조정
수출·수입·투자 등 줄줄이 전망치 낮춰
내년 경제성장률 2.6%… 수출 2.1% 증가
정부마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2.5%로 낮췄다. 하반기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이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음을 정부도 인정한 것이다.
정부는 3일 '2019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2.7%에서 2.4~2.5%로 내린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발표하는 전망치는 우리 경제가 얼마나 성장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지표가 된다. 정부가 달성 가능할 것으로 보는 목표치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지표를 보면 14개 중 10개가 지난해 말 전망치보다 하향 조정됐다.
민간소비는 애초 전망치인 2.7%보다 0.3%포인트 낮은 2.4%로 예상했다. 설비투자는 1.0%에서 5%포인트 감소한 -4.0%로, 건설 투자는 -2.0%에서 감소 폭이 확대된 -2.8%로 내다봤다. 경상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말 예상했던 3.9%보다 0.9%포인트 낮은 3.0%로,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6%에서 0.9%로 조정했다.
경상수지는 640억 달러에서 605억 달러로, 상품수지는 1075억 달러에서 940억 달러로 전망치를 내렸다. 수출은 지난해 말 3.1%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지만 이번 발표에서는 -5.0% '역성장'을 전망했다. 수입 역시 4.2% 증가에서 -4.1%로 눈높이를 낮췄다.
취업자 수는 애초 목표인 15만명보다 5만명 늘어난 20만명으로 올렸다. 서비스·본원·이전 소득수지 감소 폭도 작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고용률은 66.8%, 지식재산생산물투자 2.8%는 지난 전망치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번 전망에서 상향 조정된 것은 고용과 서비스·본원·이전 소득수지 2개 뿐이다.
수출·투자 부진…미·중 무역전쟁 불확실성 지속
정부가 이번 발표에서 경제성장률을 하향 조정한 배경은 지난해 말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대외여건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세계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있고 교역량마저 줄어든데다가 미·중 무역갈등으로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까지 확대된 상황이다.
최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미국과 중국이 협상 재개를 합의하면서 대립 국면은 일부 완화됐지만 협상과정과 결과에 따른 위험요소는 여전히 남아 있는 셈이다. 여기에 우리나라 주력 품목인 반도체가 세계시장에서 힘을 못 쓰면서 수출길마저 막혔다.
지난 2017~2018년 수출은 평균 10.5% 성장해왔다. 이중 반도체가 42.7%를 책임지며 우리나라 수출의 ‘효자’ 노릇을 했다. 하지만 지난 1~5월 수출 증가율은 전년보다 7.4% 줄었으며 반도체 수출도 21.9% 쪼그라들었다.
투자 부진 또한 심화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건설투자는 1년 전보다 7.2% 감소했다. 설비투자 역시 지난해 1분기 10.2% 증가했다가 2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하더니 올해 1분기에는 전년 대비 -17.4%까지 추락했다. 올해 경영실적 악화, 수출 부진 등 악재가 겹치면서 기업투자가 크게 위축된 것으로 보인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반도체 경기에 따라 수출량과 투자가 많이 좌우되는 구조”라면서 “연초에는 반도체 경기가 금방 좋아질 거라고 예상했지만, 하반기로 접어들면서 회복이 빨리 되지 않다는 인식이 이번 전망에 반영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중무역 갈등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 내수 부진과 대외여건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정부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률 하락 전망 예고… 연구기관 줄줄이 하향 조정
정부의 성장률 하향 조정은 예고된 수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6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성장률, 고용, 수출 등 여러 경제지표에 관해 한 번 더 짚어보고 필요하다면 조정하는 내용까지 담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준비할 것”이라고 성장률 수정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국내외 연구기관과 투자은행(IB)들 역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이 둔화할 것으로 예측하면서 성장률을 줄줄이 낮췄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경제가 2.6%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며 가장 높은 수치를 제시했다. 한국은행과 현대경제연구원은 2.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4%를 전망하며 정부와 궤를 같이했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4월 경제성장률을 2.5%에서 2.3%로 낮췄다.
2% 초반을 전망한 기관들도 있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우리나라 경제가 2.1%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와 피치는 각각 경제성장률을 2.1%와 2.0%로 예측했다. 노무라 금융투자는 1.8%로 유일하게 1%대 성장률을 점쳤다.
이에 대해 방기선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지난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된 사전브리핑에서 “민간 IB 전망은 정부보다 낮다”면서 “추경과 각종 세제지원, 투자 프로젝트 등을 포함시켜 발표한 정부 전망치가 가장 실적치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간 IB 전망은 정책적 효과가 배제된 것”이라며 “그렇다 해도 2% 미만 성장은 좀 과하다”고 꼬집었다.
‘재탕’ 정책 지적도… “정부 정책 방향 선회해야”
정부가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은 투자와 내수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다수 포함된다. 경기 흐름을 많이 받는 수출의존도를 줄이고 내수 시장을 살려 경제 성장력을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화성 복합 테마파크 조성 등 10조원 이상의 투자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했다. 또 업종별 전략을 수립해 제조업을 살리고 지능형 로봇 등 4대 선도 신산업을 추가 발굴해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전과 결이 같은 정책도 눈에 띈다. 15년 이상 된 노후차를 새 차로 교체할 경우 개별소비세를 인하한다는 정책이 대표적이다. 고효율 가전기기를 구매 시 구매금액의 10%를 환급해주는 정책도 지난 2016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포함됐던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경기 하강 국면을 인식하고도 정부가 너무 안일한 정책을 펼쳤다고 지적했다. 재정에 기대 경기 하방리스크에 대응하기보다는 정부 정책의 체질 개선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 재정 정책은 일시적·단기적인 처방일 뿐 제대로 된 처방이 아니다”면서 “정부의 정책 기조를 선회해서 우리나라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노영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