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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기쁨

하림산책 - 박하림(수필가 / 전 (주) 휴비츠 고문)
우리말에 ‘웃음이 보약’이라든가 ‘웃으면 복이 온다.’는 덕담이 있다. 웃음, 특히 여자의 뇌쇄적인 미소는 경국지색傾國之色, 한 나라를 망하게 만든 미모라 했다.

한데 그 웃음이 현대에는 건강에 특효한 요소로 억지로라도 웃고 살자 캠페인이 요란하다. 그런데 요새 웃음은 변형되고 느낌이 다르다. 옛날처럼 귀하지도 품위 있지도 않다.

음전하고 순결하며 수줍은 웃음은 보기 힘들다. 고혹적이거나 사람을 잡아끄는 웃음도 보기 어렵다. 이유가 뭘까. 그건 기쁨과 깊이 연관돼 있다.

웃음과 기쁨이 다 마음이 그 근원인데 지향하는 모양은 달라서 기쁨은 마음에 고이고 웃음은 몸 밖으로 나타난다. 마음이 기뻐 웃음이 나는 것이고 웃음이 나서 기쁜 것으로 서로 한 우물이 본디인 것은 같다. 그러나 그것들은 한 우물에서 퍼 올리는 순간 여러 가지 다른 현상을 나타낸다.

웃는다고 반드시 마음이 기쁘지 않는 것처럼 기쁘다고 꼭 웃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기쁜 마음이 드는 계기는 감동이나 만족, 행복이나 사랑 같은 것에서 비롯되는데 반해 웃음은 그런 깊은 의미나 계기가 없어도 웃을 경우가 허다하다.

정각正覺의 법열法悅, 승진과 득남의 기쁨, 성취한 기쁨 등은 마음에 고인다. 그러나 웃음은 천의 얼굴을 변화무쌍하게 실연한다.

거짓 웃음, 억지웃음, 쓴 웃음, 실소, 홍소, 헛웃음, 비루한 웃음 등 많기도 하다. 때문에 마음이 기쁘다고 기쁜 웃음을 웃는다할 수 없고 거짓웃음인데도 웃었으니 반드시 마음이 기쁜 것은 아니다.

한데 요즈음 세태를 보면 ‘웃음철학’이 가히 르네상스를 맞는 것 같다. 우선 이론이 많은데 단정적이고 무결함을 자랑으로 삼는다. 반론이라도 잘못 꺼냈다가는 촌스럽다고 한소리 듣는다. 두드러진 현상인즉 과거에 비해 웃음이 월등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한 때는 일부러 모여 강사(?)한테서 웃는 방법을 배우는 ‘웃음교실’까지 등장했었다. 아마도 삶이 윤택해지고 여가를 즐기기가 쉬워졌으며 사람들이 모이는 기회가 잦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웃으면 복이 오고 삶이 즐겁고 몸이 건강해진다는 멘토들의 장담에 이론을 제기할 여지가 없었다, 그 바람에 굳이 맞설 필요가 없었으나 남이야 웃든 말둔 내가 안 웃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그런 일과성 유행 바람이 자주 부는 사회의 비이성적 뇌화부동 현상이 결코 건전한 사회에 유해하기 쉽다.  

그런 것이 세상은 뭇소리가 섞이고 부딪히고 오가며 내는 소리로 소리난장판인데 그 와중에서 이상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노래교실에 웃음교실이란다.

돈 주고 웃는 방법을 배우고 웃어 건강을 챙긴단다. 해외토픽감 극성이다.
웃기바람이 은근히 전염성이 높아 특히 주부들이 걸려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덩달이식 웃음, 식당에서의 박장대소, 수다 떨며 요란하게 웃는 소리, 시시덕거리며 웃는 소리 등 지천이었다. 더욱 이상한 웃음은 웰빙 밴드왜건을 타고 조제한 웃음을 먹고 난 즐거워 내 나이가 어때서 지금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하며 처량 맞은 노래하는 인형처럼 웃는 것이다.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저리도 외롭고 가슴속에 활화산을 품고 사는가보다.

사실 그런 웃음은 아름답지도 진정 기쁨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웃음 끝에 공허감이 매달린다. 기쁨과 달리 웃음은 탈도 많다.
 그렇다면 기쁨의 우물은 어떤 것인가.

험하고 먼 길을 달려와 구세주 예수의 탄생을 경배한 감격이 이 세상에서 맛볼 수 있는 지고한 기쁨이고,  실로암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뜬 소경이 예수님 앞에 굻어 엎드려 기적을 감사해 눈물을 흘릴 때 기쁨이 넘쳐 모든 목격자들 눈시울을 적시고 가슴마다 뜨거운 할렐루야를 메아리치게 만드는 감동이 참 기쁨인 것이다. 저런 기쁨도 없는데 웃으면 미쳤다한다.

 세상엔 기쁨의 샘은 다 말랐는데 거짓으로 웃는 거지주머니들이 많다. 억지웃음은 뭔가 사정이 있는 것이다. 위선적 웃음은 뭔가 음모나 나쁜 의도가 숨겨 있다. 브루투스가 아버지 같은 시저의 등에 칼을 꽂을 때도 웃음으로 맞아 담소했다.

위장 평화 협상은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지만 등 뒤의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 했다. 그건 나누기 어렵지 않고 빠르게 사람들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기쁜 반향을 일으킨다. 기쁨의 열매는 행복임으로 행복 하고 싶으면 기쁨이 열리는 나무를 마음에 키워야 한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요 인간은 그 가지라 하셨으니 거기에 기쁨의 포도열매가 열리면 가지들은 행복한 것이다.
 그러므로 기쁨의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가슴에 심어 감동의 수확을 함으로써 행복해야지 그런 나무 한 그루 없이 남 따라 웃고 할 수 없이 웃으며 거짓으로 웃어서야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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