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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말의 천의 얼굴

하림산책 - 박하림(수필가 / 전 (주) 휴비츠 고문)
동서양을 막론하고 말로 인한 폐해와 재앙과 불행을 경계했다. 
인간만이 구사할 수 있고 그것으로 전쟁을 일으키기도 끝내기도 하며, 그것이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이 될 때 구원이 이뤄졌다. 공자는 천하를 주유하며 말로 인문의 도정을 설파했고 제후국들 간의 분쟁을 설득하여 전쟁을 막았다.  

세종대왕의 천재적인 한글 창제 작업은 재기가 넘치는 집현전 학사들과의 소통에 성취의 에너지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선지자를 통한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을 때는 이집트의 오랜 종살이에서 해방되었고 그 말씀을 어겼을 때는 예루살렘 성지가 적에게 유린되고 왕이 적국에 포로로 잡혀가는 수치와 불행을 겪었다. 

말의 씨앗이 참소를 키워 크고 비극적인 사화를 일으켰고, 임진왜란 중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못난 왕 선조는 모함에 뇌동, 이순신장군을 옥에 가둠으로써 조선은 제해권마저 잃어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망국 기로에 섰다.

말에는 보이진 않으나 순식간에 천 리(요새는 거리제한이 없이)를 가는 발이 있고,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놀라운 재간도 있다. 
격려의 말 한 마디에 불행의 늪에서 뛰쳐나온 청년이 크게 성공 했는가 하면, 물병에 담가 키우는 양파에게 매일 물을 줄 때마다 나쁜 소리만 들은 양파는 시들시들 병들었다, 순전히 말 때문이었다.

얼마나 많은 주부들이 남편의 폭언에 울며 결혼한 것을 후회하며 눈물짓나 모른다.

인간이 세 치 혀로 자초하는 재앙과 불행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우리 삶에 무성하다.

조선조 때 왕의 평균 수명이 40대 초반이었을 만큼 단명하였음에도 87세까지 장수,  삼정승 반열에 오른 분이 허목이다,
그는 젊어서는 산림에 묻혀 벼슬자리에 나가기를 사양하고 주자학과 실학의 기초를 놓았다. 

그가 인문도정을 가려는 후배들에게 말의 폐단을 경계해 이런 훈고를 했다. 즉 ‘구과십륙  口過 十六’ 이라 입으로 짓는 잘못 16가지를 아래와 같이 들어 경계했다. 세상이 많이도 바뀌어 상전(뽕밭)이 벽해(바다)가 되었고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변치 않는 인간의 도리와 아름다운 처신은 변함이 없다.

말의 품위와 신실함을 위해 경망스럽게 놀려 시시덕거리지 말라고 했다. 
실없이 시시덕거리면 체신머리가 없어 보인다. 수다를 떠는 게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대화에 굶주린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이다. 생활이 윤택해지고 여가가 늘어 사람끼리 어울리는 시간이 늘면서 대화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데 반해 대화의 교양은 늘지 않은 것이다. 아름다운 말의 실종은 현대사회의 병폐중 하나다.

모여 앉아 입만 열면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게 문제다.
잘 먹어 입으로 양기가 넘치는 세상이라 요새는 여자들조차 음담을 예사로 한다. 

그런 현상은 성문화를 확 바꿔 놓았다. 남녀차이나 부끄러움이 사라지면서 성의 개방이 예사가 되었고 음담패설이나 관음 행동이 만연되었다. 성적 카타르시스를 즐기는 게 자연스럽다. 
 웬 불만이 그리도 많은지 버럭 화내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그런 말에 자식들 까지도 놀라고 마음을 상한다. 버럭 화내 벼락 치듯 고함치고 쌍욕을 하고 비난하는 장면을 어렵잖게 보는데 사는 게 힘들어 마음이 살벌해진 탓일 것이다. 
자동차 접촉사고가 난 경우만 해도 반응하는 행동을 보면 목청부터 높여 기를 제압하려 든다. 어쨌거나 합의할 건데 말이다. 그만큼  불신의 벽이 높은 것이다. 교양이 높을수록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합의는 조용조용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과격한 사람이 이외로 많다. 
개가 요란하게 짖는 게 무엇 때문인가 하면 상대 출현 자가 무섭기 때문이다. 무섭지 않고 낯익으면 꼬리를 흔든다. 그러므로 과격한 말은 일단 적대적인 속을 드러내는 것이다. 협상하려거나 설득하려면 그런 말투를 바꿔야 한다. 말의 본디란 어머니의 자장가로 부드러움이다.

남의 잘못 지적을 수치로 여기는 말운 못난 말이다. 

훌륭한 임금은 신하의 간곡하나 뼈아픈 간언을 듣고 안색이 바뀌지 않으며 말의 부드러움을 잃지 않는다 했다. 요새는 충고를 감사히 받는 풍조가 사라지고 날선 변명과 반박, 여색한 해명이 난무한다. 당최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 정보의 일반화와 지식습득이 쉬어진 탓이다. 남을 존경할 줄 모르고 남의 말을 존중할 줄 모르면 공동체생활이 어렵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아닌 척 시치미를 떼는 말은 추하고 구차스럽다,
거짓 변명을 하는 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더 큰 불신을 산다. 그 비겁함 때문에 소외당한다. 특히 지도자나 통치자의 경우 저런 처신으로 불신을 사면 끝장이다.

입에서 나온 말 중에 가장 사악한 게 중상모략이고 인간세계를 병들게 만드는 말이 남의 허물이나 들춰내고 뻔뻔하게 남을 비방하는 말이다.
세 치 혀를 놀려 간악한 거짓말로 남의 명예를 더럽히고 죄를 뒤집어씌우는 행위는 짐승세계에도 없는 인간의 악한 짓이다. 그런 짓이야말로 분열을 조장하고 사람이 반목하게 만들어 비극을 부른다.

말 중에 가장 비루하고 몰염치한 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남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말이다. 수오지심, 즉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이 실종된 사회는 짐승세계만도 못하게 되며, 자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날뛰는 사회 역시 인간사회라 할 수 없다.  
예부터 필화筆禍 (글로 인한 화)와 함께 설화舌禍, (말로 인한 화)를 조심하라 했다. 말 때문에 남에게 화를 입히고 자신도 화를 입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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