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대한노인회 각급 회장 중에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해서 정관을 개정하려는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이러한 일이 우리 대한노인회에 또 다시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노파심에서 이 글을 쓴다.
대한노인회는 지난 7월 13일에 열린 이사회에서 각급회 회장이 3선(12년간 집권)이 가능하도록 하는 정관개정안을 임시총회에 상정키로 했다.
대한노인회 총회의 구성원은 중앙회 회장단, 중앙회 이사, 시도연합회장, 시군구지회장 등으로 구성돼 있으므로 자신의 임기를 연장하자는 안건에 반대표를 던질 회장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므로 상정만 되면 통과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필자는 1969년 대한노인회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지난 50년간 단체의 발전을 위해서 직. 간접적으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던 입장에서 앞으로도 대한노인회가 전국 720만 노인의 권익을 대표하는 단체로 평가받기 위하는 마음, 그리고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웃어른 집단으로서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더 나아가 각급회장들이 장기집권의 추한 모습을 나타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쓴다.
대한노인회 역대회장 중 이규동, 이호, 백창현, 안필준 등 4명의 중앙회장은 장기집권을 위해서 재임기간 중 무척 노력했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재임기간 중 사회적인 평도 그리 좋지 않았었다.
이규동 회장
이규동 회장의 경우 노인회 전국 조직 확장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필자가 1981년 3월 13일 그를 회장으로 영입, 1982년 5월 12일 그가 퇴임할 때까지 14개월 재임한 분이다.
그는 재임기간 중 사회에 물의를 일으킴으로써 정부 방침에 의해서 임기를 못 채우고 퇴임했다.
이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원흥균 부회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앉혀 놓음과 동시에 자신은 자청해서 명예회장이라는 직책으로 회무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그러면서 회장직에 다시 복귀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규동 옹이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며칠 뒤부터 그를 회장직에 복귀시켜달라는 청원서가 하루에도 천 여 통씩 청와대에 배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내용은 모두 대동소이한 것이어서 누가 봐도 이 탄원서들은 순수한 민의를 반영한 것이라고 보기에 문제가 있었다. 이는 이규동 회장이 심복들을 시켜 배후에서 조작한 행위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끝내 회장직에 복귀하지는 못했다.
이 호 회장
다음으로 이 호 회장은 1982년 9월 25일부터 1988년 9월 24일까지 만 6년간(3년 임기 1차 중임) 대한노인회장으로 재임했다.
그는 과거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대한적십자사총재 등을 역임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다.
이 호 회장은 6년 임기가 끝나갈 무렵 한 번 더 회장을 하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 중앙회 임직원들도 그의 3선을 부추겼다. 그가 회장직에 머물러 있어야 자기네들의 자리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호 회장의 3선을 위해서 수개월 전부터 전국의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득표공작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필자로서는 한 사람에 의한 장기집권은 회의 발전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호 회장은 학식, 교양, 풍부한 행정경력 등 모든 면에서 흠 잡을 데 없었으나 중앙회장이 장기 집권하는 관례를 만들면 지방조직의 회장들도 역시 장기집권의 욕망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필자는 여하한 일이 있어도 그의 3선은 저지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총회가 열리기 며칠 전 이 호 회장을 회장실에서 독대, 그의 거취문제를 거론했다. 필자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어떤 단체를 막론하고 한 사람이 장기집권하면 그 끝이 좋지 못하다는 회장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이승만, 박정희대통령의 말로까지 환기시켰다. 민주화세력들이 고개를 들고 있는 차제에 만일 추종자들의 말만 믿고 3선에 도전하였다가 총회에서 크게 망신을 당할 염려도 있다는 정황까지 설명하며 재출마를 단념토록 종용했다.
그는 필자의 권고에 묵묵부답이었다. 그래서 어색한 분위기에서 회장실을 나왔다.
필자는 개인적으로는 미안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당시 노인회가 처해 있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결국 3선 출마를 포기했다.
백창현 회장
백창현 회장의 경우 평생동지론을 주장하며 장기집권을 획책했다.
백창현 회장은 1994년 2월 28일부터 2000년 2월 22일까지 만 6년간 대한노인회장을 한 분이다.
그는 1997년 2월 3년 임기가 만료돼 차기 회장에 출마했는데 그의 밑에서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던 신강순에게 경선에서 몇 표차이로 신승함으로써 1차 중임에는 성공한다. 따라서 2000년 2월까지는 회장에 머무를 수 있지만 그 후로는 정관상 3선에 도전할 수 없기 때문에 정관을 개정해서라도 회장직에서 물러나지 않으려고 무리수를 쓰기 시작했다.
1999년에 접어들면서부터 그는 돌연 ‘평생동지론’을 제창하기 시작했다.
‘평생동지론’이란 회장을 비롯해서 대한노인회 각급회 회장은 계속 회장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오래도록 그 자리를 유지하면서 대한노인회 발전을 위해서 기여하는 동지가 되자는 것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이 있듯이 새로운 사람이 나와서 회장을 하는 것 보다는 회장 경험이 있는 현직 회장들이 계속해서 회를 운영해 나가는 것이 이 나라 노인들을 위해서 더욱 도움이 된다는 것이 ‘평생동지론’의 골자다.
이 논리는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싶지 않은 각급회장들로서는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었다. 그래서 백창현 회장은 임기 만료 4개월을 앞 둔 1999년 10월초 정관의 개정작업에 착수했다.
‘각급회 회장은 1차에 한 해 중임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던 조항을 삭제하는 정관 개정안을 작성해서 전국의 시군구지회장에게 발송, 서면결의를 통해서 이를 가결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 회장이 무제한 연임할 수 있도록 규정한 정관 개정안은 승인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한 사람에 의한 장기집권은 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주무 부처의 공식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어찌된 일인지 총회가 열리기 1개월을 앞두고 보건복지부가 돌연 종전의 입장을 접고, 그 정관 개정안을 승인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백창현 회장의 인맥을 총동원한 대정부 로비활동이 효력을 발생한 셈이다. 당시 백창현은 재력을 배경으로 정치권을 동원하여 그 일을 해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기도 했다. 어쨌든 백창현은 정관을 개정함으로써 3선 도전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래서 필자는 여하한 일이 있어도 한 사람에 의한 장기집권의 관례를 남겨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안춘생 옹을 회장으로 출마토록 하고, 필자가 전국을 순회하면서 대의원들을 설득, 그를 당선시킴으로써 박창현의 3선을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안필준 회장
안필준 회장 역시 장기집권 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회장 중의 한 분이다.
안필준 회장은 2008년 2월 20일에 13대 회장으로 취임한 뒤 3년의 임기를 마치고 2006년 2월 총회에서 재선되어 재임하던 중 2009년 8월 26일 직무상 과로로 타계한 분이다. 그는 회장 취임과 동시에 정관을 개정하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안필준 회장은 2003년 12월 5일 이외윤, 이존하, 정운태 등을 위원으로 하는 정관개정위원회를 발족시킴과 동시에 이들에게 현회장들이 가급적 회에 오래 머물러 있도록 개정해 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당시 정관에는 회장의 임기는 3년으로 하고 1차에 한해서 중임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1차에 한해서’라는 조항을 삭제하자는 의견이 제시돼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무제한 중임 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어서 모양새가 좋지 못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래서 안필준 회장이 고심 끝에 고안해 낸 정관 개정안은 3년이던 임기를 4년으로 늘리고, 부칙으로 ‘임원의 임기는 개정된 정관의 시행일 이 후 새로이 임기가 시작되는 임원부터 시행되도록 한다’는 교묘한 규정을 둠으로써 중앙회 현 회장을 비롯한 각급회장은 3선이 가능하도록 정관을 개정했다.
더구나 회장 선출규정에는 현 회장이 절대적으로 유리해서 각급회 회장은 4년 임기를 두 번, 그리고 본인이 큰 과오만 없으면 4년 임기를 더 채워 12년 장기집권 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당시 현역 연합회장이나 지회장들 중에는 10년 이상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분들도 많았는데 이들의 경우 이 정관개정으로 20년 가까이 장기간 회장직에 눌러앉아 있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이상으로 장기집권을 획책했던 대한노인회 중앙회장들의 움직임을 사실대로 살펴보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회장의 장기집권은 결코 대한노인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앞으로 총회에 상정되더라도 부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과거 여러 차례 정관 개정과 관련해서 있었던 일들을 소개하며 중앙회 대의원인 각급회 회장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