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반일감정의 순화(馴化)

하림산책 - 박하림(수필가 / 전 (주) 휴비츠 고문)
요즈음 부쩍 고조된 한일 양국 간의 불화를 생각할라치면 자못 답답하기 짝이 없다.해서 반일감정을 다루는데 〔순화 馴化〕 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해묵은 반일감정도 이제 신세기 시대정신과 환경에 부응해 변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일관계는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태인 것 같다. 불씨가 감정적인 문제에서 물리적 보복이나 국민적 불매운동 같은 행동양상으로 비화되려 하는데 그 심각성과 비이성적 왜곡이라는 문제가 있다. 

일테면 지금 우리 앞에는 종군위안부 동원에 대한 사과라는 소승(작은 수레)과 한일관계라는 대승(큰 수레) 두 수레가 놓여있다. 한국은 다분히 서툰 대일정책 때문에 급기야 일제상품 불매운동이라는 국민운동까지 벌이려하고, 일본은 유치하게도 한국에 수출하는 핵심소재와 장비 등의 수출을 중단시키겠다고 위협한다.

어느 쪽이 더 타격을 입을 건지는 자명하다. 우리나라 수출의 핵심제품이 생산을 못하게 될 것이다. 수출상품의 대표 격인 반도체만 해도 생산에 들어가는 필수부품 세 가지를 전적으로 일본에서 공급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뒤늦게도 그러한 무역보복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는데 별로 실효성이 없다는 중론이며, 또 핵심부품과 장비개발을 위해 수 조원을 투자하겠다는데 그 실현성이나 경제성, 타이밍 모두가 적절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혜로움이나 시대감각에 있어 한참 뒤져 정치적 뒷북만 뒤늦게 치고 나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럴 것이 어느 시민단체가 사태의 전후 사정이나 진실이 뭔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사실 규명도 없이 감정적으로 일제상품의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나서도록 사태를 악화시킨 장본인이 바로 정부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정말로 한국으로 하여금 반일감정을 버리지 못할 정도로 양국관계를 끌고 왔는지에 대한 진실규명이 필요하다.

혹자는 일본이 독도영유권주장에 격분하여 배일감정을 증폭시키는데 그런 유의 신경전이란 국가 간 이해상관의 다툼에서 흔히 있는 일로 배척의 불씨로 태울 게 못된다. 그러므로 정부가 반일감정을 부추겨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진상은 알려져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한일 양국처럼 긴밀한 관계를 가진 데가 없다. 
지정학적으로는 일의대수一依帶水의 가까운 인접 국가이고, 문화적으로는 문자와 종교를 비롯해 거의 모든 생활문화를 한반도에서 배우고 본떴으며, 무엇보다 한반도가 일본인의 조상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혈연관계가 특이하다.

그럼에도 한일관계가 마치 원한에 찬 원수처럼 상극을 달려온 것은 순전히 임진왜란과 조선의 강제병탄으로 시작된 36년간의 식민통치 때문이다. 일제의 만행과 수탈로 수없는 조선인이 죽고, 문화가 말살되었으며, 강산이 피폐되었다. 조선인치고 친일파를 제외하고는 일본에게 좋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혹시라도 필자의 논조가 친일적이라 오해 받을 것을 배제하기 위해 일본과 관계된 가문역사를 소개한다.

필자의 경우 일본에 대한 원한이 사무친 한사恨事가 가문애사로 있었다.
 임진왜란 때 조정에 출사한 두 분 선조께서 임금 몽진에 호가호위扈駕扈衛 (임금을 호위하여 배행함)하였다가 객사하셨고, 그 할아버님의 조카 되는 선조 한 분은 약관에 의병대장이 되어 청주성 북문에서 왜적을 막아 싸우다 전사하셨다. 하여 환궁한 임금이 한 가문에서 세 명이나 순절하였으니 널리 알려 그 충절을 기리라 하였다. 임란의 한이 우리 가문에 깊이 새겨진 것이다.

그러한 애사의 맥락에선가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탄한 후 항일운동의 시작으로 불타오른 3.1만세사건 때 나의 조부께서 만세운동에 연루돼 피신하게 되어 결국 여생을 숨어 지내시게 되었다. 가주가 없는 집안은 급격히 쇠운의 길을 걸어 집안을 역경에 빠트렸다. 그러므로 일테면 필자는 일본에 대한 관심이 높은 만큼 감정이 나쁘다.

그러나 운명은 필자로 하여금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만들었다.

한일 합작기업에서 5년을 경영자로 근무하며 일본을 알고 공부하게 되었으며 일본을 드나든 50년 세월에 많은 체험을 통해 일본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제 필자는 감정적인 배일파가 아닌 이성적인 극일파가 되어 있어 현재의 한일 관계를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한일관계의 역사적 진실이 무엇인가를 냉정하게 살펴보고 지금 정부가 혼란과 갈등 속으로 몰아넣은 한일관계의 정상화가 얼마나 시급한가를 환기시키고자한다.

일본이 한국(인)한테 자행한 한스러운 과거사를 충분히 사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한국국민의 반일정서에 대해 우린 좀 더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죄를 소홀히 하였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고노담화나 무라야마담화를 통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는 전 세계가 다 아는 것임으로 굳이 여론화해서 규탄할 필요가 없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전쟁을 일으켜 여러 국가에 고통을 주었고 피해를 입힌 터에 종전 후 우리나라에 얼마나 성의 있는 자세로 배상에 임했든가 그 실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5년 한일국교의 정상화를 위한 한일협정을 맺은 이후 일본이 한국을 진정한 우방으로 대했던가를 올바르게 파악해야 한다. 그런 후에 반일 대열에 서도서야 옳다.

한일협정을 서둘러 맺어 배상금으로 6억 달러를 받았는데 그 외환 규모는 당시 일본의 외환보유고의 24 퍼센트에 해당하는 거금으로 외환보유액이 밑바닥인 우리 경제에는 실로 거금이었다. 
그 자금 가지고 포스코 건설 등 경제부흥의 초석을 놓는데 자본으로 쓸 수 있었다. 한국이 경제부흥에 성공, 선진국대열에 오를 수 있었던 발전에는 일본의 속죄배상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그보다 더 일본이 대승적인 도움을 한국에게 준 대사건이 1997년에 벌어졌으니 갑자기 덮친 IMF사태다. 우리나라를 국가부도 위기로 몰아넣은 외환위기를 우리 자력으로는 수습할 수 없었음으로 한국은 역사 이래 최악의 경제파탄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 무능한 문민정부는 망양지탄, 우방의 도움만 바랄 뿐이었다.

IMF와 우방국들이 협력해 한국의 부도사태를 막고 외환지불능력을 되살릴 자금지원을 하고 나섰다. 그 80억 달러의 60 퍼센트인 47억 달러를 부담한 나라가 미국도 중국도 러시아도 아닌 일본이었다. 한국이 부도직전 경제위기에서 극적으로 회생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일본의 자금지원 덕분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큰 은혜를 기억하여 외교적으로라도 감사서한이라도 보냈든가 들은 바 없으니 사실이라면 우리는 부끄러울 뿐이다.

한일간 국교가 정상화된 이래 한국이 단 한 번도 무역역조를 반전시킨 적이 없어 대일무역적자가 천문학적 규모에 달할 정도로 의존도가 높다. 그런 관계성을 감정적으로 본다면 자존심이 상할 일이나 외교가 어디까지나 실익 위주로 라면 우린 일본과의 거래가 상당히 밀접한 게 사실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옳다. 

우리 경제의 핵심인 자동차, 전자, 조선, 기계, 철강, 석유화학 분야의 초기기술의 이전과 필수 기본설비를 공급한 나라가 일본이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한일관계가 지금처럼 악화될 이유가 나변에 있나 의문인 것이다. 

지금 21세기의 5분지 1이라는 세월이 빠르게 흘러가면서 세상이 심한 변화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격변의 시대에 우린 어떤 시대사상과 시대감각을 가지고 경쟁마당에 나서고 외교를 하며 대통령을 뽑고 경제를 운영하려는가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철저하게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함으로 사고의 전환을 서두르라는 것이다.한데 한일 양국은 과거사에 매몰돼 감정싸움을 벌이느라 피차 상처만 입힐 뿐 아무런 실익도 얻지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한일관계를 아득한 과거로 끌고 가 기억하기조차 괴롭고 창피하며 아무런 이득도 없는 종군위안부 치부를 만천하에 까발리고 다닐 건가, 또 일본은 대국답지 않게 북핵문제로 고통당하고 있는 한국을 보복하여 관계나 한국인 반일정서를 더 악화시키겠다는 건지 묻고 싶다. 

특히 정치적으로 반일정서를 이용하려는 그 어떤 더러운 획책도 용납해서는 안된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