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두 분이 같이 사시는 것 같은데요. 자주 봤어요.”
30억원 대 양도소득세 등을 탈루한 A 씨는 법적으로 이혼한 상태였지만 주변 탐문을 통해 이혼 이후에도 부부가 같은 집에서 사는 정황이 쉽게 확인됐다.
이혼 후 많은 재산을 배우자에게 넘겨 세금을 낼 돈이 없다는 A 씨의 말은 거짓일 가능성이 컸다. 전형적인 위장이혼을 가장한 탈세로 보였다.
국세청 직원들은 경찰 입회하에 A 씨의 집에 대한 주거지 수색을 전격 단행했다.
집에서 A씨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문제는 숨겨진 ‘돈’을 찾는 일이었다.
수색을 통해 금고 2개를 찾아냈지만 A 씨는 끝까지 금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국세징수법에 따라 강제로 문을 열 수도 있었지만 직원들은 A씨가 스스로 금고를 열 수 있도록 설득을 했다.
새벽에서야 열린 금고에서는 4억 3000만원 상당의 5만원권 현금 뭉치가 쏟아졌다. 4억 5000만원 상당의 골드바 3개도 나왔다.
세금을 낼 돈이 없다던 A 씨는 결국 수색이 끝난 뒤 4억원의 세금을 자진 납부했다.
국세청은 이외에도 A 씨로부터 18억원의 채권을 확보하고 친인척 명의 계좌에 은닉한 수십억 원에 대해서도 증여세 부과를 통보했다.'
11일 국세청이 공개한 재산 추적 사례를 보면 상습 체납자에 대한 재산 추적 사례는 가히 007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다.
국세청 직원은 국세징수법에 따라 수색 영장이 없어도 거주지 등에 대한 수색이 가능하다. 수색 과정에서 금고 등이 발견되면 세무 공무원이 직접 열 수도 있다.
국세청 직원들은 주거 수색에 앞서 체납 혐의를 파악하기 위해 주거지와 사업장 주변에 대한탐문 조사를 벌여 체납자의 실거주 여부, 차량 운행 시간 등을 미리 파악해야 한다.
특히 빈집은 수색할 수 없기 때문에 외출 시간을 먼저 파악하는 것은 필수다.
어렵게 자택을 수색해도 금고를 열어주지 않거나 은밀한 장소에 돈을 숨겨놓는 경우가 많아 체납자와 승강이를 벌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 체납자는 소파 등받이에 1000만원짜리 수표 등 4000만원을 숨겨놨다가 국세청 직원에 덜미를 잡히기도 했다.
체납자들의 재산 은닉 유형은 위장이혼부터 타인 명의 사업장 은닉, 허위 양도 등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종합소득세 등 80억원대 세금을 내지 않은 B 씨는 고미술품 수집·감정가였다.
그는 고가의 미술품을 자녀가 대표자로 있는 미술품 중개법인 등에 보관하는 방법 등으로 재산을 은닉하다가 국세청에 덜미를 잡혔다.
국세청은 미술품 중개법인 등에서 수색해 감정가 2억원 상당의 미술품 60점을 압류하는 등의 성과를 냈다.
부가가치세 등 70억원대 세금을 체납한 C 씨는 국세청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아파트 전세금 8억4000만 원에 대한 채권을 배우자에게 넘기는 꼼수를 부렸다.
국세청은 C 씨의 이런 행위가 세금 납부를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채권을 다시 원상 복귀하라는 취지의 ‘사해 행위취소소송’을 제기해 승소, 세금을 추징하기도 했다.
억대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D 씨는 부동산을 팔아 받은 돈 중 18억 원으로 배우자의 빚을 갚고 12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배우자 명의로 산 뒤 바로 협의이혼했다.
국세청이 D 씨의 이런 행위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협의 이혼에 따른 재산 분할이라는 주장을 폈다.
결국 국세청은 소송을 제기해 D 씨의 행위가 통상적인 재산 분할보다 과도한만큼 재산 추징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강조했고 승소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한 D 씨는 체납된 국세 3억8000만원을 납부했다.
국세청은 이런 방법으로 올해 10월까지 1조5752억원의 세금을 징수하거나 조세 채권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거둔 1조4985억 원보다 767억 원(5.1%) 더 많은 것이다.
전광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