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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장, 김원봉 서훈 가능성 일축

국회 정무위 출석해 의원들 질의응답서 밝혀, 박삼득 처장 “향후 기준 바꿔 추진할 생각 없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은 22 시점의 기준상으로는 약산 김원봉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처장은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이같이 밝혔다. 그는 추후 서훈 추진 가능성도 일축했다.



처장은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이국가유공자법상 김원봉씨는 대한민국에 공을 세웠나, 해를 끼쳤나라고 묻자북한 국가 수립에 기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부분에 관해서는 ()라고 있다 답했다.



의원이피우진 보훈처장이 김원봉의 독립유공자 서훈 가능성 발언으로 정무위가 파행됐다 지적하며국민 대다수 여론이라고 인정할 있겠냐 묻자 처장은전임 처장의 얘기에 대해 제가 얘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말했다.



처장은 이어김원봉 서훈을 앞으로 (법적) 기준을 바꿔서라도 추진할 생각이 있냐 질문에그런 생각은 없다 밝혔다.



처장은 김선동 자유한국당 의원으로부터도 김원봉 관련 질의를 받았다.



처장은 의원이김원봉이라는 조선 의용대가 국군의 뿌리가 됐다는 주장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고 있나라고 질문하자조선의용대가 광복군으로 편입되면서, 그리고 해방이 되고 그것이 새로운 나라가 수립되면서 국군이 탄생했다.



그렇게 연결됐을 (국군의 뿌리라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 6 64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해 이후 논란이 가중되어 왔다.



다음은 문대통령이 김원봉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1945,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마지막 5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지난 3 충칭에서 우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복원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임시정부는 1941 12 10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습니다.



힘으로 1943,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OSS)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준비하던 광복을 맞았습니다.



김구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일제가 항복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이만희 한국당 대변인은 6 6 논평을 통해  서해수호의 유독 호국행사를 외면해 대통령은 오늘도 동족상잔을 일으켜 민족 최대의 희생을 초래하고 최근까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우리 국민의 희생을 가져온 북한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다라며



특히 미군 전몰장병의 희생까지 기린다면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하고 6·25 남침의 공으로 북한에서 훈장까지 받았다는 김원봉을 집어 언급한 대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없다 했다.



대변인은보수든 진보든 구분 없이 우리가 애국해야 하는 대상은 오직 대한민국뿐이라고 했다.

전희경 대변인도 논평을 내고 “1948 월북해 조국해방전쟁, 6.25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 기가 막힐 노릇이라고 밝힌 있다.

 이경구 기자oldage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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